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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강행①] 언론계·법조계도 반발한 악법


입력 2021.08.20 00:00 수정 2021.08.19 22:41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모호한 기준 근거로 무거운 징벌

고의·중과실 추정 독소조항 여전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 저하 초래

김어준 의식? 유튜브는 규제 제외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를 막아서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및피해구제에관한법률’(언론중재법)을 놓고 언론계와 법조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국제언론인협회는 물론이고 진보성향 언론단체까지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외면한 채 25일 본회의 처리까지 밀어붙일 기세다.


19일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 등 연론 현업 4단체는 언론중재법이 문체위를 통과하자 공동 성명을 내고 “‘언론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을 감시하는 언론의 발을 묶어 최대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시”라며 “민주당의 오만과 불통, 역주행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허성권 KBS 노조위원장은 언론중재법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 앞에서 삭발 투쟁을 감행했다.


관훈클럽·한국신문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도 공동 성명을 내고 “언론을 일반인의 공적으로 규정해 언론사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며 언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에 앞서 국제언론인협회는 지난 17일 “모호한 개념에 기초해 엄중한 처벌을 도입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명백한 위협이 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민주당이 처리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허위·조작 보도’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요건을 갖출 경우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을 두고 있는데 전 세계에 입법례가 없는 반헌법적 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요건을 갖추면 언론사에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하고, 고의·중과실이 아니라는 점을 언론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건을 두고 있지만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등 마찬가지로 기준이 모호해 법조계에서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언론중재법 통과되면, 최순실 사건 같은 보도 앞으론 불가능"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앞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철폐투쟁 범국민 공동투쟁위원회 결성식에서 허성권 KBS 노조위원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여권 인사들은 “영미법 국가에서 다 운용하는 제도”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영미법계에서 민사소송 전반에 ‘징벌적 손해배상’ 논리가 판례로 쌓여왔을 뿐, 언론과 같이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법률로 도입한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등을 규정하고 있어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중처벌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법안이 처리될 경우,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기능 약화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고위 공직자와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언론의 감시기능은 그대로’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절반의 사실에 불과하다. 역사상 권력형 비리는 주로 권력자의 가족이나 친인척, 비선실세 등에서 발생했는데 이번 언론중재법이 발효된다면 언론은 시작도 전에 포기할 공산이 크다.


정의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모호하고 추상적인 기준으로 허위·조작 보도를 잡으려다 언론 전체를 때려잡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삼성 X파일 사건, 2007년 대선 BBK와 다스 사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같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대한 언론보도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한변협도 앞서 성명을 통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파헤쳐야 하는 언론에 대해 사소하거나 모호한 위법 사유 또는 왜곡된 주장만으로 해당 기사의 진실성과 취재원 등에 대한 모든 입증책임을 언론사가 져야 한다면 이는 보도 자체의 포기를 종용하는 결과로 이어져 언론의 비판 기능이 위축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기존 언론사에는 재갈을 물린 데 반해 정작 가짜뉴스 논란이 큰 유튜브나 1인 미디어에 대한 규제는 제외했다. “SNS와 1인 미디어가 더 문제”라고 했던 이낙연 대표 시절 미디어·언론상생TF와 정반대 방향이다. 유튜브 의존도가 높은 여권 지지층을 의식한 ‘선택적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17일 한국언론학회 주최 언론중재법 토론회에 참석한 정은령 서울대 팩트체크 센터장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어떤 목적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만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가짜뉴스의 상당수가 언론이 아닌 유튜브·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성되는 상황에서, 이를 막아야 할 의무를 가진 언론을 규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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