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남북 공존 한반도 모델' 구축 제안
日에는 "대화의 문 항상 열어두고 있다"
원칙·원론적 수준 언급…미래 비전 초점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중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에 남북·한일관계와 관련한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는 '공존'을, 일본에는 '협력'을 당부하는 원칙적·원론적 수준의 언급만 했다. 문 대통령은 대신 경축사에서 '꿈', '세계'라는 단어를 각각 20차례 거론하는 등 미래 비전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에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하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 구축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극복하며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을 이끌어가는 EU(유럽연합)의 선도국이 됐다"며 '독일 모델'을 언급한 뒤 "우리에게 분단은 성장과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동시에 항구적 평화를 가로막는 강고한 장벽이다. 우리도 이 장벽을 걷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코로나19의 위협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며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후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동아시아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북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 말로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된다"며 "특히 대한민국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쳐내고 사실상의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연결될 때 누릴 수 있는 이익은 막대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전 대북 제안과 달리 '종전선언'이나 '평화 협정'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산가족 상봉 등 구체적인 남북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하며 남북 통신연락선을 2주 만에 차단하고, 대남(對南) 비난 담화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새 제안을 내놓을 경우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도 대외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를 통해 "(한미연합훈련 개최는) 남조선 당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 온 평화와 신뢰 타령이 한갓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文, 미래지향적 협력·과거사 문제 해결 '투트랙' 재확인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반일'이나 '극일' 메시지 없이 미래지향적 협력과 과거사 문제 해결을 별도로 풀어가자는 '투트랙' 전략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제안은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며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거 문 대통령의 경축사 내 대일 메시지와 비교하면 유화적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2019년 광복절에는 "이웃 나라에 불행을 줬던 과거를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에는 '헌법 10조'를 언급하며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일제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 문제를 정부가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그러면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지지통신과 닛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날 문 대통령이 협의를 통한 문제 해결에 거듭 의욕을 표명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일본 측이 기대하는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은 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한편, 이번 광복절 경축식 장소가 거행된 '문화역서울 284'는 일본이 일제강점기 원활한 수탈을 위해 경성역으로 만들어졌지만, 광복 후 산업화 과정에서 주요 삶의 터전이 됐고, 민주화 운동 주요 장소라는 점에서 선정됐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오늘 기념식이 열리는 '문화역 서울284'는일제강점기, 아픔과 눈물의 장소였다"며 "그러나 광복과 함께 역과 광장은 꿈과 희망의 공간이 되었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출발한 기차에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부산, 인천, 군산을 비롯한 항구도시들도 희망에 찬 귀향민으로 북적였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