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독서하며 가족과 조용한 휴식
금융 불안 대응 구상에 시간 보낼 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재확산 여파에 국내 주요 금융그룹 수장들이 휴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의 휴가 보장을 위해서라도 매년 여름휴가를 떠나던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분위기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다시 커질 우려가 있는 데다, 멈출 줄 모르고 불어나는 가계부채를 둘러싸고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등 현안이 산적해 있어 휴식 일정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등 국내 5대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은 아직 올해 여름휴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각 금융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은행을 이끌고 있는 허인 KB국민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권광석 우리은행장, 권준학 농협은행장 등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들은 뒤늦게 휴가를 잡게 되더라도 대부분 집에서 독서를 하면서 코로나19에 대응한 경영 구상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수도권은 최고 수위인 4단계로, 비수도권도 3단계로 강화된 상황에서 일상적인 휴가를 떠나긴 어렵다는 판단이디.
과거 금융사 CEO들은 해마다 7월 말에서 8월 초가 되면 빼놓지 않고 여름휴가 일정을 소화해 왔다. 정부의 국내 소비 진작 정책에 부응하고, 직원들도 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차원에서였다.
변화가 생긴 건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여름에도 금융지주 회장들은 여름휴가 기간이 임박하도록 일정을 잡지 못했다. 결국 대부분 특별한 휴가지로의 여행 없이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충격·가계부채 등 현안 산적
금융그룹 수장들의 여름휴가가 이처럼 정중동 모드로 전환한 배경에는 코로나19 여파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코로나19 충격으로 금융은 물론 경제 전반이 충격에 휩싸이자, 이를 반영한 경영 계획을 구상하는데 여름휴가 기간까지 활용하는 모양새다.
올해는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재유행에 발목이 잡혔다. 국내 확진자가 연일 사상 최대 수치를 갈아치우며 네 자릿수 대 기록을 유지하는 등 코로나19가 4차 대유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경기에 악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재확산이 생각보다 더 길어지면 올해 3분기 마이너스 성장률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공언한 연간 4%의 경제성장률 달성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백신 보릿고개가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른 방역조치 강화가 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이 계속해 몸집을 불리고 있는 가계 빚을 더 강하게 관리하겠다며 금융사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현실도 부담 요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시장 관련 대국민담화에서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 관리 목표인 연 5~6%를 맞추기 위해선 올 하반기엔 3~4%대로 관리돼야 한다"며 "(가계 부채를) 더 엄격하게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그룹 관계자는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악영향 등을 고려하면서 CEO의 여름휴가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고, 휴가를 쓰더라도 집에서 독서와 경영 구상으로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