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업하고 사업장 점거해도 사측 방어권 꽁꽁 묶여
노사간 힘의 불균형 심화…노조 억지 요구 반복 원인
주요국은 대체근로 금지 조항 없어…국제기준 따라야
협상은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대화를 통해 절충하는 과정을 말한다. 하지만 한쪽은 칼을 휘두르는데 다른 한쪽은 칼은커녕 막을 방패조차 없다면 제대로 된 협상이 이뤄질 수 있을까.
막대한 경제·사회적 비용 손실을 초래하는 자동차 업계 노조의 상습 파업은 이같은 ‘무기대등(武器對等)의 원칙 파괴’에 따른 ‘노사간 힘의 불균형’이 초래한 구조적 문제다.
노조는 사측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는 파업을 사실상 아무 제약 없이 단행할 수 있는 반면, 사측은 방어 수단이 거의 없다.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하는 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사측과의 교섭에서 어느 정도 차수(次數)를 쌓은 뒤 (교섭 내용과 무관하게)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발생 결의 후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고하면 된다.
형식상 노동쟁의 조정이지, 애초에 노조가 파업을 목적으로 절차를 밟는 마당에 중노위가 나선다고 조정이 될 리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노위는 쟁의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게 되고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을 단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내부적으로는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쟁의권이 있어야 교섭을 더 유리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노조 집행부의 설득에 대부분의 경우 가결 기준인 과반수 이상의 조합원들이 찬성표를 던진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파업 기간 동안은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점은 조합원들에게 불리한 일이지만, 파업권을 ‘협상용’으로만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은 찬성률을 높게 만든다. 심지어 노조 집행부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무시한 채 사측을 압박해 파업 기간 동안의 임금 손실을 받아내겠다고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쉽게 확보한 쟁의권을 가지고 노조는 사측에 압박을 가한다. 노조가 파업하면 가동중단에 따른 단순 손실은 물론 적기공급 차질로 인한 시장(혹은 OEM 주문업체)으로부터의 신뢰 악화로 사측은 큰 타격을 입는다. 심지어 노조가 의도적으로 회사측이 생산차질에 가장 취약한 시기, 이를테면 신차 출시나 해외 수출 개시 타이밍에 맞춰 파업을 단행하기도 한다.
이런 노조의 횡포에 맞서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노조 파업으로 빈 생산라인에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고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막을 수도 없다.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을 막으려면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경영계는 이처럼 사측의 방어권을 제한해 놓은 노조법을 뜯어고칠 것을 정부와 정치권에 호소해 왔다.
‘무기대등의 원칙’과 ‘기본권의 조화로운 보장’ 관점에서 근로자에게 파업권을 보장한다면 사용자에게도 대체근로를 실시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수단은 ‘직장폐쇄’ 정도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는 쟁의행위가 발생한 이후에만 허용되며, 쟁의행위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할 수 있도록 철저히 제한돼 있다.
나아가, 직장폐쇄는 회사 스스로가 조업을 중단하는 것인 만큼, 제 살 깎기 식의 손실을 각오해야 되는 일이기도 하다.
르노삼성은 지난 5월 노조의 무기한 파업 선언 당시 부분 직장폐쇄로 맞선 사례가 있다. 당시 파업 참여 의사가 없는 조합원들이 많았던 관계로 근로희망서 작성자에 한해 조업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결국 XM3 유럽 수출물량 생산이 본격화되는 6월 1일부터 직장폐쇄를 풀어야 했다.
대체근로 전면 금지는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는, 극단적으로 노동계에 편향된 기형적 제도이기도 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처럼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 자체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은 특히 대체근로가 자유로운 편이다. 미국의 경우 파업권과 영업의 자유, 양자의 균형을 고려해 파업시 일시적인 외부인력 대체뿐만 아니라, 영구적 대체근로도 허용하고 있다.
독일 역시 대체근로 활용을 사용자의 조업과 영업의 자유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보고 원칙적으로 파업참가 근로자에 대한 대체를 허용한다. 다만 파업 발생 사업장에 파견근로자를 투입하는 것만 금지한다.
프랑스도 대체근로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으며, 외부기업에 대해 하도급을 주는 형식의 대체근로 활용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파견근로계약이나 기간을 정해 놓은 근로계약자를 활용한 대체만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
일본은 아예 대체근로 금지에 관한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명문의 규정이 없다. 파견에 의한 대체근로 금지조차 규정해 놓지 않았다.
쟁의행위시 직장점거 금지도 사측의 방어권 확보 측면에서 요구되는 사안이다. 노조는 쟁의행위시 사업장 시설을 점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노사 간 소모적인 충돌을 불러와 갈등과 반목을 증폭시켜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노조가 사업장을 장기간 점거하고 시위하는 과정에서 안전사고, 기물파손 등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유발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해외 주요국들은 근로자의 단결권이 중요한 만큼 사용자의 재산권, 점유권, 영업의 자유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직장점거 자체를 위법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경영계는 지난 6일부터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며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등으로 노조의 단결권이 강화되는 만큼 사측의 방어권도 국제 기준에 맞춰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달 28일 고용노동부 장관 초청 30대 기업 CHO(최고노무담당자) 간담회에서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서는 노사간 힘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대체근로 허용, 직장점거 금지 등 사용자의 대항권을 국제 기준에 맞게 보완하고, 사용자만 일방적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는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