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정체성인 불굴과 투혼의 아이콘
모두가 절망할 때 극적인 반전 일으켰던 레전드
투혼을 불사르며 불굴의 의지를 드러냈던 ‘레전드’ 고(故) 유상철 감독이 7일 세상을 떠났다.
2019년 11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싸워온 지 약 1년 7개월 만이다. 증상이 호전돼 최근에는 TV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돼 치료를 받아오다 7일 오후 7시20분께 서울 아산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50세.
대한축구협회는 7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유 감독의 영면 소식을 전하며 "당신과 함께한 그날의 함성과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협회는 유 전 감독의 2002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을 올리며 '유상철 1971-2021'이라고 적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SNS에 "유상철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이자, 영원한 월드컵 영웅이었다"고 전했다.
유상철은 1998년 울산 현대에서 데뷔해 K리그와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A매치 122경기(18골) 뛴 '전설'이다.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멀티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최후방 수비수부터 최전방 공격수까지 소화했다.
생전 명경기를 손가락으로 다 꼽기 어렵지만, 축구팬들 뇌리와 가슴에 꽂혀있는 강렬했던 장면들은 타계 후 회자되고 있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한일전 동점골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유상철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경기다. 8강 한일전 전반 20분 미우라에게 선제골을 내줘 대표팀이 0-1 끌려가던 상황에서 짜릿한 동점골을 터뜨렸다. 한일전 역대 명승부에 꼽히는 이 경기는 황선홍 골로 장식됐지만 그에 앞선 유상철의 골이 없었다면 역전승은 어려웠다. 이 경기는 역대 한일전 명승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1998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 동점골
차범근 감독이 중도 퇴진한 직후 치른 벨기에전. 엄청난 압박 속에 치른 벨기에전에서 유상철은 주장 완장을 찼다. 2패를 당했고 감독도 없는 한국 입장에서는 그대로 무너질 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상철은 ‘붕대 투혼’ 이임생 등과 함께 벨기에의 강슈팅을 몸을 날려 막아냈다. 투혼으로 버티던 한국은 유상철의 골로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26분 하석주의 프리킥이 다소 길었지만 유상철은 끝까지 달려가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유상철은 한국의 유일한 승점을 이끌어냈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 결승골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서 열린 2001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 후반 45분 극적인 결승골로 2-1 승리를 이끌었다.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던 박지성이 왼쪽에서 코너킥으로 절묘하게 올려 준 볼을 헤더로 연결해 결승골을 터뜨렸다. 전반 경기 중 상대 선수와의 경합에서 코뼈가 부러진 상황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했다. 당시 함께 뛰었던 황선홍-홍명보 등은 “너무 위험한 행동이지만 그만큼 승리욕이 강했다. 대단한 투혼으로 기억된다”고 추억을 꺼낸 바 있다.
‘오대영 참사’로 불리는 프랑스전 대패 후 조롱거리가 됐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잡게 해준 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폴란드전 골
2002년 6월 부산에서 열린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와의 대결에서 황선홍 선취골로 1-0 앞선 후반 8분, 유상철은 시원한 슈팅으로 폴란드의 골네트를 흔드는 쐐기골을 터뜨렸다. 환한 미소를 띠고 그라운드를 달렸던 유상철의 세리머니는 아직도 국민들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유상철은 생전 인터뷰에서 “모든 골들이 기억에 남지만 잊히지 않는 골은 한일월드컵 골이다. 사상 첫 승리를 이끌었고, 숙원이었던 16강 진출의 발판이 된 골”이라고 자평할 만큼 자주 리플레이해 봤던 골이다.
유상철은 유니폼이 찢어지고, 눈두덩이가 찢어져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기억되는 레전드다. 절망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극적인 골을 많이 터뜨렸다. 모두가 '끝났다'고 실망할 때, 극적인 반전을 일으켰다. 한국 축구의 정체성이 됐던 투혼을 온몸으로 보여준 유상철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는 한국 축구에 녹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