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반도체 등 실질 협력 관계로 확장
美 공급망 기반 韓 백신 파트너십 성과
한미공동성명에 '대만' '남중국해' 거론
균형 외교의 무게추 美로 기울었단 해석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간) 첫 한미정상회담은 안보 중심의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백신 및 반도체·배터리, 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실질 협력 관계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이번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과의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의 기반을 다지게 됐고, 한국은 백신과 관련한 파트너십 구축, 미사일 주권 회복 등을 성과로 남기게 됐다.
한미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의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대에 발맞춰 나가겠다는 결의를 함께하고 있다"며 "현 시대의 위협과 도전과제로 인해 새로운 분야에서 양국 간 파트너십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코로나19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백신 글로벌 포괄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백신과 관련한 미국의 선진 기술과 한국의 생산 역량을 결합하기로 했다. 또한 반도체, 친황경 전기차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 의약품 등과 같은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해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민간 우주 탐사, 과학, 항공 연구 분야에서의 파트너십 강화와 해외 원전시장 내 협력 발전도 약속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 직후 현지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의 '실질 협력'과 관련해 "한국은 백신 공급 생산 역량을 확대하여 제공하고 미국은 기술 협력, 백신 원부자재 등을 공급하는 데 강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분야에서 상호 비교우위를 극대화하는 호혜적 투자 및 공동 연구․개발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5G, 6G, AI, 양자, 바이오, 청정에너지, 우주탐사 등 미래 성장 동력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과 관련해서는 "제3국의 원전시장 진출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원전 공급망 공조를 촉진하기로 했다"며 "IAEA 추가 의정서를 원전 공급의 조건으로 하는 정책을 채택하여 핵 비확산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있어 우리의 리더십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공동성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성 모호성'을 취해 온 우리 정부가 우회적으로 미국의 대중견제에 동참한다는 뉘앙스의 문구를 공동성명에 담았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에 중국이 직접적으로 거론되진 않았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요소로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가 명시됐다. '쿼드'를 포함해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언급까지 들어갔다.
양국은 "한국과 미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며,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며 "우리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 "바이든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도 언급했다. 한미가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협력 범위에 포함된 5G와 반도체도 미중이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이다. 미국은 해당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협력 의사를 밝힌 것으로, '무게추'가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해석된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대북정책 등과 관련해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해 미국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남중국해 관련 사항들은 우리 정부가 이미 아세안 관련 회의 등에서 합의했던 사항들이고, 미국도 이미 밝혀 온 입장"이라며 "이번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합의하는 계기에 양국이 서로 이해를 같이 하는 부분들을 정리해 뒀다"고 원론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쿼드에 대해서도 "특별히 논의된 사항은 없었다"면서도 "앞으로도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제반 분야에서 쿼드 참여국 등 역내 파트너 등과 협력을 지속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이날 JTBC 인터뷰에서 "대만 관련 표현은 아주 일반적인 표현"이라며 "미국도 우리와 중국 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하기 때문에 과거 미일 정상 간 공동성명과 우리와 공동성명에서 인도·태평양 분야의 내용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반중 해석을 경계했다.
다른 나라가 대만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내정 간섭'으로 여기고 있는 중국은 당장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관영 환구망은 '내정 간섭! 한미공동성명 역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언급했다'라는 기사를 통해 우려를 제기했다. 환구시보는 한미정상회담 전날에도 "(대만 언급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한국이 미국의 협박에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우려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