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자산운용사 이어 씨티은행까지 소매금융 철수
금융당국 과도한 경영 간섭에 글로벌 경쟁력 '발목'
# 정부의 규제 정책이 강해질수록 규제 사각지대가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칙에 입각하지 않은 규제 설계를 문제삼고 있다.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규제는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경제논리에 입각한 과도한 시장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논리를 외면한 정부의 규제 일변도가 효과를 발휘하기는 커녕 가격불균형으로 인한 시장 왜곡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정부의 규제 정책에 따른 부작용을 점검하고 바람직한 방향성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각종 규제를 이기지 못한 외국계 자본의 엑소더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보험사와 자산운용사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씨티은행마저 국내 소매금융 부문에서의 철수를 선언하며 충격이 커지는 모습이다.
치열해지는 시장의 여건 속에서 계속되는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한국의 금융 경쟁력을 갉아 먹고 있다는 우려는 날이 갈수록 점점 깊어져만 가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국내 소매금융 출구전략에 대한 구체적 방안 마련에 들어간 상태다. 외국계 은행이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에서 손을 떼는 것은 2013년 HSBC코리아 이후 8년여 만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 고객 영업을 지속하는 외국계 은행은 조만간 SC제일은행만 남게 될 전망이다.
은행뿐 아니라 다른 금융업권의 사정도 비슷하다. 2013년 네덜란드의 ING생명, 2016년 독일의 알리안츠생명, 그리고 지난해 미국계인 푸르덴셜생명 등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보험사의 한국 탈출도 계속되고 있다. 2013년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2018년 JP모건자산운용 등 대형 운용사들도 우리 시장을 빠져나갔다.
외국계 금융사들의 한국 시장 철수가 잇따르고 있는 데에는 금융당국의 과도한 개입이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금리로 인해 금융 경영 여건이 나빠진 점도 있지만, 이런 와중에도 심화하는 규제가 외국계 자본의 등을 돌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금융당국의 배당 제한은 이런 흐름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금융위원회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장기화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금융사들을 향해 당기순이익 중 배당 비율을 20% 이내로 제한하라고 권고했다. 끝내 씨티은행을 포함해 국내에서 영업 중인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이에 맞춰 배당을 결정했다. 우리나라 금융사에 투자한 외국 자본 입장에서 보면 현지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축소시킨 셈이었다.
금융권에 대한 규제 강화는 전방위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불완전판매의 입증 책임을 금융사에게 지웠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카드사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국회는 금융사들이 5년간 2000억원을 출연해 서민금융 재원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서민금융법도 의결했다.
자본시장에서도 비슷한 염려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잇따라 해외 주식 시장을 노크하기 시작하면서다. 독일 기업에 지분을 판 우아한형제들에 이어 쿠팡마저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선택하며, 이들의 성장 터전을 제공한 한국은 과실만 빼앗긴 모양새다.
결국 규제가 기업들의 발길을 밖으로 돌리게 만들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달 말 증권사 최고경영자 간담회를 열고 "제2, 제3의 쿠팡이 미국에 상장하는 도미노 현상이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 자본시장의 상장 제도나 절차에 개선점을 검토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증시 이탈을 막기 위한 상장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규제 환경 탓에 우리나라 금융의 글로벌 금융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행처럼 이어져 온 관치금융 문화와 함께 정책적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하는 금융당국의 스탠스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금융 선진국은 물론 싱가포르나 홍콩 등 아시아 금융 허브와 비교해도 한국 금융당국의 경영 개입은 그 정도가 너무 강하다"고 평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금융 정책 기조가 너무 쉽게 바뀌는 현실도 외국 자본에겐 큰 불안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