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범죄 줄지 않고 젠더갈등만 더욱 심화돼…처벌 더 강력히 강화돼야"
“강남역 사건, 페미니즘 운동 확산 분기점 중 하나” vs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발화점만 됐다"
전문가 "여성 혐오 용어 사용 자제해 혐오주의 및 남녀대결 구도 지양…처벌강화 및 예방교육 선행돼야"
화장실로 향하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났다. 여성 혐오 '묻지마 살인'의 대명사가 된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자성과 변화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비판 분위기만을 조장해 젠더갈등만 더 부추기고 가열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이 피해자가 됐을 때 여성 혐오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남용하면 혐오 주의가 심화돼 남녀 대결구도만 양상하고 피해는 가중될 것이라며, 처벌 강화와 동시에 혐오가 범행 동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예방 교육이 선행돼야한다고 조언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상가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가해자 남성은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다녀가기 전 이미 6명의 남성이 화장실에 다녀갔지만,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참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가해자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후 여성들은 '무차별적 여성 혐오에 의한 살인'이라며 대대적인 비판운동을 벌였다.
5주기를 맞은 지난 17일을 전후에 강남역에서 만난 여성들은 다양한 의견들을 내놨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만난 허모(30)씨는 “강남역 사건 이후 5년 동안 여성 혐오가 더 심해졌다”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조심하는 방법 밖에 없어서 밤에 돌아다니는 것도 꺼려진다”고 토로했다.
대학 졸업반인 방모(25)씨는 "솔직히 아직도 밤길 다니는 게 무섭다. 여성 혐오 범죄가 별로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의 여성들 모두가 자각하고 무엇인가를 바꾸어 나가야하는 시점인데, 또 그렇게 가기 위한 계기가 된 사건인데, 아직 모든 것이 진행 중이어서 그런지 효과도 미비하고 오히려 원치 않고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들만 야기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의 예방을 위해선 강력한 처벌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의 솜방망이 처벌이 강화되면 여성 혐오로 인한 여성 대상의 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만난 연모(22)씨는 “정부가 직접 적극적으로 나서서 처벌을 강화하지 않으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남녀 갈등의 폭도 좁혀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성 김모(21)씨는 “혐오 범죄의 처벌 기준이 약하다고 생각된다”며 “처벌의 기준이 강화되고 명확하게 정해지면 남성들도 이 문제가 범죄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 점차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강남역 살인 사건이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의 발화점이 됐다고 주장한다. 백래시는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나타나는 대중의 반발 심리나 반동을 의미한다.
강남역 근처에서 만난 김모(29)씨는 “강남역 사건으로 인한 분노가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하게 된 분기점 중 하나라고 본다”며 “그런데 이런 운동이 확산되다 보니 일부 사람들이 백래시로서 여성 혐오 발언이나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심모(20)씨는 “대학교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언쟁을 보고 여성 혐오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학교 커뮤니티 시사 게시판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싸우는 것을 봤다”며 “남녀 갈등 문제가 아닌데도 싸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로에 대한 막무가내 적개심과 분노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대상 범죄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비판 분위기만을 조장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여성 대상 범죄와 성폭력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범죄들이 많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 블루'로 인해 묻지마 범죄 발생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여성 피해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 중 여성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 너무 과하게 여성 혐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려된다”며 “혐오 주의가 계속 심화하면 점점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만을 만들어 서로의 피해를 양산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또한 “혐오 범죄의 해결책으로는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동시에 혐오가 범행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방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