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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두번의 이중창 배틀...메조소프라노의 색다른 매력 발산”


입력 2021.05.12 16:55 수정 2021.05.12 17:15        민병무 기자 (min66@dailian.co.kr)

오페라 ‘안나볼레나’서 다시 조반나 역할..."이번엔 청순 캐릭터 기대"

오페라 '안나볼레나'에 출연하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서울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첫 공연 때보다 부담감이 훨씬 큽니다. ‘인생 오페라’를 두 번 만남 셈이니 남들은 여유가 있겠다고 말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6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더 발전하고 성숙한 ‘조반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납니다.”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고개를 저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Anna Bolena)>에서 ‘조반나’ 역할을 다시 맡았지만 떨리는 속내를 숨길 수 없었다. 연속해서 같은 배역에 캐스팅됐다는 것은 ‘이 캐릭터는 역시 김정미가 최고’라는 찬사지만,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이달 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을 앞두고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긴장과 설렘이 복합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토록 무게감을 느끼는 이유는 <안나 볼레나>가 벨칸토 오페라를 대표하는 대작이기 때문이다. 잘해야 본전, 이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16세기 영국 왕실의 실화를 바탕으로 펠리체 로마니가 대본을 쓰고 가에타노 도니제티가 작곡했다. 실제 인물을 이탈리아어 대본에 맞춰 이탈리아식 이름으로 바꿨다.


영국 튜더가의 군주인 헨리 8세(엔리코)는 형이 세상을 떠난 뒤 형의 아내 캐서린을 왕비로 맞아들인다. 딸 하나만 낳고 아들은 낳지 못한 캐서린에게서 마음이 떠난 헨리 8세는 캐서린의 시녀인 앤 볼린(안나 볼레나)을 두 번째 왕비로 맞아들인다. 앤 역시 딸 하나를 낳고 아들을 사산한다. 그 딸은 훗날 위대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된다. 하지만 비극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헨리 8세는 앤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조반나)와 결혼하기 위해 앤을 불륜죄로 법정에 세운다. 앤은 결국 1000여일간의 궁정생활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 익숙한 스토리는 영화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도니제티는 흥미로운 영국 왕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 <로베르토 데브뢰>로 이어지는 여왕 시리즈 3부작을 완성했다.


지난 2015년 라벨라오페라단이 첫선을 보였을 때 “과연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보란 듯이 성공을 거뒀고 김정미 또한 제몫을 해내며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도 걱정이 앞선다고 하소연이다.


“어려운 작품이에요. 한마디로 벨칸토 오페라의 끝판왕이죠. 솔직한 목표는 첫공 때와 마찬가지로 ‘망신만 당하지 말자’입니다. 경험이 있으니 악보 습득은 다른 가수보다 빠르겠지만 ‘조반나 김정미’로의 변신이 만만치 않아요. 한번은 테너와 또 한번은 소프라노와 고음배틀을 벌여야 합니다.”


시원하게 고음을 치면 잠시 숨을 고를 틈을 줘야 하는데 끝없이 높은 음이 펼쳐진다. 두 번의 이중창이 메조소프라노에겐 일종의 ‘넘사벽’이다. 잠시 정신줄을 놓으면 금세 무너진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도니제티가 원망스러울 정도”라며 혀를 내두른다.


오페라 '안나볼레나'에 출연하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서울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하지만 김정미는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어떻게 보면 꼬박 6년을 준비한 것이 아닌가. 엔리코와 함께 부르는 ‘내 모든 영광이 그대에게 빛나리라(Tutta in voi la luce mia)’와 안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하느님(Dio, che mi vedi in core)’에서 실력을 뽐낼 준비를 마쳤다.


특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하느님’은 갈등 구조로 얽히고 설킨 조반나와 안나가 각자의 음색으로 드라마틱 장면을 연출하는 하이라이트다. 조반나는 안나에게 바로 내가 왕의 새로운 여자라고 실토한다. 엔리코를 사랑하지만 이 사랑은 자신에게 고문이라며 슬픔을 토해낸다. 안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조반나를 용서한다. ‘에너자이저 김정미’는 두 여인이 느끼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주고받으며 처절하게 노래한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예고하고 있다.


초연 때 힘을 합쳤던 양진모 지휘자와 이회수 연출이 이번 공연에도 함께 한다. 든든한 지원군이다. 하지만 6년 전과 ‘180도 다른 안나 볼레나’를 선사한다. 무대세트와 의상을 모두 바꾼다. 주인공의 우울함과 불안함, 그리고 은밀함을 더욱 밀도 있게 표현해 장엄한 사극이 주는 비극적 감동을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인공들의 캐릭터도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살짝 희망사항을 노출했다.


“조반나와 안나의 인물 설정이 첫공연 때 극적 전개를 위해 바뀌었어요. 조반나는 표독스러웠고 안나는 청순가련형이었죠. 이번엔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가지 캐릭터를 고수하기 보다는 새로운 느낌이 참신해 보이잖아요. 연출가님 신경 좀 써주세요.(웃음)”


김정미는 오페라를 재미있게 즐기는 팁도 알려줬다. 미리 줄거리를 훑어보고, 역사적 배경을 두루 살펴보고, 한번쯤 유튜브 등을 통해 대표곡을 들어보란다. 이런 ‘작은 수고’가 선행돼야 비싼 돈 내고 티켓을 구입한 보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저도 이 작품을 하면서 역사 공부를 꼼꼼하게 했어요. 가톨릭에서 영국국교회(성공회)로의 종교개혁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그 후의 팩트들도 알게 됐어요.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느 정도 스터디를 해야 오페라를 즐감할 수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문화생활을 못한 분들은 이번에 꼭 <안나 볼레나>를 보면서 힐링하세요. 위로와 위안뿐만 아니라 역사공부도 저절로 됩니다.”


한편 <안나 볼레나>는 오는 29일(토)과 30일(일) 모두 세 차례 공연한다. 비운의 주인공 ‘안나볼레나’는 소프라노 오희진과 이다미가, ‘엔리코’는 베이스바리톤 김대영과 양석진이 번갈아 맡는다. 안나의 시녀이자 엔리코의 세번째 왕비 ‘조반나’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와 방신제가 더블캐스팅 됐다. 이밖에 안나의 옛 연인 ‘페르시’는 테너 이재식과 석정엽이, 궁정가수 ‘스메톤’은 메조소프라노 여정윤과 김하늘이, ‘로쉬포르’는 테너 최은석, '허비'는 테너 김지민이 연기한다.


이강호 라벨라오페라단장은 “2015년 국내 초연에 이어 6년 만에 돌아오는 이번 무대는 더욱 탄탄하고 현대적이며 강렬한 작품으로 선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티켓은 1만~20만원이며, 예술의전당과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민병무 기자 (min6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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