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변죽만 울려" NYT 인터뷰에 트럼프 '작심 비판'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바이든에 '립서비스' 의도 해석
중재 역할 한계 드러내…"외교적 결례로 신뢰도 하락"
한미의 전·현직 대통령이 서로 비판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뉴욕타임스(NYT) 인터뷰가 그 도화선이다.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사실상 실패했다고 평가한 건 북미 대화 재개를 촉구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내달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신뢰도 하락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성명서를 내고 "북한의 김정은은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알게 됐는데, (그는) 한국의 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다"며 "문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군사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갈취할 때 외에는 지도자로서 협상가로서 약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향한 (북한의) 공격을 막은 것은 언제나 나였지만, 그들에게 불행하게도 나는 더 이상 거기에 없다"고 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최근 NYT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두고 "변죽만 울렸을 뿐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3년 8개월 간 9차례의 정상회담, 20차례 이상의 전화 통화를 가질 정도로 각별한 사이를 자랑했다. 두 정상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과 강력한 지도력 덕분"이라고 치켜세웠고, 트럼프 전 대통령도 문 대통령을 향해 "매우 유능하고 역량이 있다"고 했다.
미국과 북한을 향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촉구하고 있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러한 '작심 비판'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를 방증하듯 청와대도 공식 반응을 자제하는 중이다. 전직 대통령의 평가에 대해 논평을 낼 경우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대해 정부 안팎에서는 내달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4개월 째 확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성과를 내야 하는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일종의 '립서비스'를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득(得)보다 실(失)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장했던 '문재인 정부 불신론'이 다시 부각됐다. 이에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했던 문 대통령의 대외적 이미지가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다. 특히 '트럼프 지우기'에 매진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상징하는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라고 제안한 것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통화에서 "명백한 문 대통령의 실수"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한 말이겠지만, 전임 대통령을 존중하지 않고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신뢰가 낮아질 수 있다"며 "결국 국익 손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조급증만 드러낸 셈"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인터뷰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