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우리·하나·농협금융, 석탄 발전 PF 일제 중단
보험·증권사·지방은행도 동참…투자 新패러다임 주목
문재인 대통령이 글로벌 사회를 향해 탈(脫)석탄금융을 공식 선언하며 탄소중립 정책에 속도를 낸다. 국내 대표 금융그룹들을 위시로 지방은행과 보험·증권사들까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에 더욱 힘을 싣는 모습이다. 환경과 공동체 등 비계량적 영역이 금융사의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확대돼 나갈 것으로 보인다.
21일 청와대와 금융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오는 22~23일 영상으로 개최되는 세계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첫날 마련된 정상 세션에서 해외 석탄발전 수출에 대한 국책 금융기관의 지원 중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펴낸 '2020 한국석탄금융 백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국내 금융기관이 석탄발전에 제공한 전체 금융 규모는 6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22조2000억원을 차지했던 공적 금융기관의 석탄발전 금융지원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이번 문 대통령 발표의 핵심 골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세계기후정상회의 동참을 계기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였던 공공 금융기관의 해외 석탄발전 사업 투자에는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이들이 올해부터 관련 사업에 추가 투입하려던 자금은 약 3조2000억원에 달하는 실정이었다. 그 액수도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계속 늘어 왔다.
금융권의 탈석탄 기류도 한층 힘을 받게 됐다. 대형 금융그룹들은 일찌감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채권 인수 등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표한 상황이다. 특히 그룹 차원에서 관련 정책에 힘을 쏟으면서 탄소중립 움직임은 빠르게 전 금융권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국내 금융그룹들 중 처음으로 탈선탄 금융을 선언했다. 현재 약 20조원 규모인 ESG 상품·투자·대출을 2030년 50조원까지 확대하는 'KB 그린 웨이'를 추진 중이다. 이달에는 글로벌 환경 이니셔티브인 넷제로은행연합(NZBA)에 창립멤버로 가입하며 눈길을 끌었다. NZBA는 2050년까지 넷제로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은행 간 리더십 그룹으로, 세계기후정상회의 일정과 맞춰 오는 22일 공식 출범한다.
신한금융그룹도 최근 신한은행을 통해 공식적으로 탈석탄 금융 참여를 발표했다. 신한은행은 그룹의 친환경전략에 따라 자산 포트폴리오 배출량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배출량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ESG 주요 요소들을 투자와 여신 심사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2050년까지 그룹 전 관계사 적용을 목표로 한 탄소중립 계획 실행에 들어갔다. 하나금융은 환경사회 리스크 관리체계를 상반기에 구축해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문제가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금융지원을 억제할 방침이다.
우리금융그룹 역시 탈석탄 금융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신규 석탄발전 PF는 중단하고, 기존에 투자된 관련 자산도 리파이낸싱 시점에 가능한 회수할 계획이다. 우리금융은 탈석탄 금융 선언에 그치지 않고 그린뉴딜과 연계해 녹색금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친환경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올해 'ESG 트랜스포메이션 2025' 비전을 선포했다.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과 그린뉴딜 정책에 발맞춰 가기 위한 포석이다. ESG 투자에 농협의 특성을 반영, 신재생에너지 투자와 친환경 농업·농식품 기업을 지원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한 지방금융그룹들도 ESG 경영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BNK금융과 DGB금융, JB금융은 모두 ESG 추진을 위한 별도 조직을 마련하며 친환경 금융 사업에 본격 돌입했다. 특히 올해부터 주요 지방자치단체가 시 금고 은행 선정 시 탈석탄 금융 선언 여부를 평가 항목에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한층 발걸음을 재촉하는 분위기다.
보험업계도 속속 탈석탄 선언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을 포함한 한화그룹 금융 6개사는 향후 국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PF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이미 2018년 6월 이후 석탄 발전에 대한 신규투자를 중단했고, 신한생명은 최재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를 ESG 자문대사로 위촉하며 ESG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증권·자산운용사들은 ESG와 연계해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KB증권의 'KB ESG성장리더스증권자투자신탁'은 ESG 항목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을 선별 투자한다. 삼성증권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는 '삼성 에너지 트랜지션' 펀드를 내놨다. NH아문디 100년 기업 그린 코리아 펀드는 환경 투자에 중점을 두는 주식형 ESG 상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그룹들의 ESG 경영 의지가 분명해지는 가운데 정부의 시그널까지 명확해지면서, 환경과 투자를 동시에 고려하는 장기지속성 투자에 대한 관심이 확산돼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