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판사 역량에 달렸지만 기록 검토에만 보통 한 달…업무분담 갈등 나면 더 길어질 것"
"부담감 높은 재판부에 남기로 스스로 결정해 놓고 2개월 만에 빠지는 것은 시기상 묘해"
"의도적으로 재판을 미루기 위해 휴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장 제기
현 정권과 관련한 주요 사건을 도맡아온 김미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휴직하면서 담당 사건들의 재판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20일 사무분담위원회 의결을 거쳐 김 부장판사의 후임으로 마성영 부장판사를 형사합의21부에 배치했다. 김 부장판사가 21일부터 자리를 비우는 점을 고려해 재판부 공백을 피하기 위한 조처로 풀이된다.
하지만 법조계 전문가들은 형사합의21부가 그동안 심리해 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비리 의혹 사건', '청와대 울산선거 개입 의혹 사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재판들이 지연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부장판사는 "형사합의21부에 예민한 사건들이 특히 많고 기록도 방대한 탓에 새 법관이 와도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데만 한두 달은 걸릴 것"이라며 "이것도 마 부장판사가 적응을 잘했을 경우고, 업무 분담으로 재판부에서 갈등이 생기면 또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형사합의21부 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지는 대체자(마 부장판사)의 적응에 달려 있겠지만, 일단 김 부장판사가 주관해 온 재판들이 대체로 미뤄진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는 "현재까지 형사합의21부의 사건 재판들은 대부분 늦어지고 있는데 이보다 더 길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김태훈 변호사는 "마 부장판사가 속전속결로 배치된 것은 그만큼 김 부장판사의 대체자로 큰 고민 없이 낙점 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며 "재판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형사합의21부는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주요 사건을 집중적으로 배당 받았지만 재판을 더디게 진행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 '청와대 울산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피고인 13명을 지난해 1월 재판에 넘겼지만, 형사합의21부는 재판 진행 1년 4개월째가 되는 5월 10일에야 첫 공판 일정을 잡았다. 아울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의 재판은 김 부장판사의 병가로 기약 없이 연기됐다.
일부 법조계 전문가들은 재판에 속도가 붙기 직전 휴직을 신청한 김 부장판사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익명의 전직 부장판사는 "김 부장판사는 지난 2월 법관 인사의 관례를 깨고 4년째 서울중앙지법에, 3년째 같은 재판부에 유임됐다"며 "돌연한 질병 때문이 아니라면 부담감이 높은 재판부에 남기로 스스로 결정해놓고 2개월 만에 빠지는 건 시기상 묘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선 교수는 "여론이 보기에는 김 부장판사가 의도적으로 재판을 미루기 위해 휴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 "부디 그러한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장영수 교수는 "김 부장판사가 병가를 낼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사정이 없는데도 핑계로 병가를 썼느냐 하는 점부터 밝혀져야 한다"면서 "그전까지 불필요한 의혹을 생산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