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 기븐'호 수에즈 운하에 좌초되면서 엿새째 선박 발 묶여
선박 운임 및 원자재 가격 급등 전망…장기화 시 물류 대란 전망
대만 해운사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되면서 물류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배가 계속 움직이지 않을 경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물길이 막혀 무역과 제조부문 모두 천문학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대만 선사의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수에즈 운하 남단에서 좌초됐다.
이 선박은 폭 59m·총길이 400m로 대각선으로 운하를 막은 상태다. 에버 기븐을 용선하는 선사 에버그린은 "사고 당시 풍속 25노트의 돌풍이 발생해 선박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수에즈 운하의 통항이 엿새째 중단됐다. 운하 관리 당국은 현재 예인선과 준설선을 동원해 선박을 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선박의 뱃머리가 박혀 있던 제방에서 총 2만7000m³ 모래와 흙을 퍼내고, 18m까지 굴착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갖은 노력에도 배가 꿈쩍도 않자 글로벌 해운사들은 선박 우회를 속속 결정하고 있다. HMM은 이번주 해당 항로를 지나는 선박 4척에 대해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우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상 선박은 2만4000TEU급 'HMM 스톡홀름호' 'HMM 로테르담호' 'HMM 더블린호'와 5000TEU급 부정기선 'HMM 프레스티지호'다. 스톡홀롬호는 아시아발 유럽행 선박이며 나머지는 유럽발 아시아행 선박이다.
HMM 관계자는 "'디얼라이언스'와 협의 끝에 이번주에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선박을 우회하기로 했다"며 "다음주에 이동하는 선박들은 추후 상황을 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HMM선박 중 가장 먼저 수에즈운하 진입이 막힌 2만4000TEU급'HMM그단스크호'는 인근 해상에 계속 발이 묶여있다. 이 밖에 일주일 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하는 한국 선박은 약 30척인 것으로 전해졌다.
희망봉으로 우회하면 운항 거리가 6000여 마일(9650km) 늘어난다. 선박에 따라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 보다 7~14일 더 소요된다. 운항 기간이 늘어나면서 연료비 부담도 그만큼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로 선박 운임 상승은 물론 원자재 공급 마비에 따른 가격 급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에즈 운하는 하루 평균 50여 척의 선박이 통항하고 있으며, 전 세계 해상 물류의 12~13%를 차지한다. 이번 사고로 매일 90억 달러(약 10조1700억 원) 규모의 물동량이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수에즈 운하에 발이 묶인 선박 갯수가 증가해 가용 선박 부족으로 선박 운임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운하를 이용하기 위해 대기 중인 선박 수는 369척이다.
실제 국제유가는 26일 기준 WTI가 60.97달러, 브렌트유가 64.57달러로 전일 대비 각각 4.11% , 4.22% 상승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배가 우회해서 오더라도 이 배들이 짐을 내린 뒤 가용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선박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유조선도 제 때 입항하지 못하니 기름 부족 현상으로 유가가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업계는 28~29일(현지시간) 만조 시기가 도래함에 따라 배가 다시 움직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만일 인약 작업이 실패할 경우, 배에 실린 화물을 내려 배의 무게를 줄이는 작업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선박들의 대기 기간도 그만큼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양진흥공사는 '수에즈 운하 선박 좌초 사고 영향 긴급 분석' 보고서를 통해 수에즈 운하 통항 제한이 장기화될 경우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부문 영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해양진흥공사는 "이번에 좌초된 선박이 전장 400m에 이르는 초대형선이어서 인양작업 성사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점이 시장의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면서 "운하 통항수 기준 1, 2위를 차지하는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은 운하 통항 지체 장기화 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LNG선과 자동차선도 통항 제한 장기화 시 수송 차질 불가피하다"면서 "양 선종 모두 전용선 및 장기계약 비중이 높아, 톤마일 증가에 따른 운임의 직접 상승 보다는 화물의 수급 차질 문제가 더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초대형선 사고를 계기로 안전 기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한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실장은 "선박이 초대형화되면서 안전 운송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면서 "화물을 보다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안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