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연인들을 위한 기념일로 불리는 3월 14일 ‘화이트데이’는 그 출처가 일본 기업의 상술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날이다. 하지만 과학 특히 수학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는 재미있는 날이란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과학계에서 3월 14일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날이면서 스티븐 호킹의 기일이고, 수학계에서는 원주율, 즉 ‘파이(π)의 날’이다. 수학과 과학에서 다양하게 응용되는 원주율의 근삿값 3.14159…에 맞춰 세계 각국의 수학과에서는 3월 14일 오후 1시 59분에 기념행사를 열기도 하고, 이에 맞춰 피자나 파이 가게의 행사도 시작된다. 몇 가지 소개하면 이번 3월 14일은 일요일이었는데 일부 매장에서는 3.14달러에 파이나 피자 등을 팔기도 했다. 주로 π를 의미하는 3.14를 가격으로 책정하고, 여기에 원 형태의 제품을 제공하는 기념행사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기념일은 매년 돌아오고 반복되기 때문에 그 본질을 되새기고 나아가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3월 1일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의미 있는 기념일이다. 일제에 대한제국이 강제로 병합된 이후, 우리나라의 독립을 세계에 선언하고, 거족적인 만세 시위를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일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3월 1일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 경축일로 지정되어 기념행사가 개최됐고, 이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올해에도 어김없이 3.1절 기념식이 있었다. 흔들림 없는 대한민국의 독립 의지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자 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대통령은 ‘탑골공원’에서 3.1절 기념식을 열었다. 이전에 기념식이 주로 열렸던 중앙청, 서울운동장, 세종문화회관 등을 돌이켜보면 3.1만세운동의 의미와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돌아간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 기념사에서 ‘탑골공원’은 ‘3.1 독립운동이 시작된 역사적 현장’으로서 ‘102년 전 오늘, 이곳 탑골공원에서 민족의 회복과 도약이 시작 된 곳’이라고 언급한 이유도 이런 연유라고 본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민족의 회복과 도약’을 언급한 것은 우리 민족이 직면한 현안이 102년 전에는 일제의 강점이었다면,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세계적 위기이기 때문이리라. 예방접종이 시작됐지만, 벌써 해를 넘겨 이어지는 현재 사태는 누구에게나 어려움으로 다가옴직한 것이다. 정신병적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가 계속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이를 회복하는 과정은 또 다른 도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3.1운동을 전후한 스페인 독감과 콜레라 극복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념일과 그날 국가 수반의 기념사는 매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흔히 미국 대통령 연설은 그 즉시 5만 명 이상이 분석에 들어간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은 우리나라에 그 전문이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번역 역시 거의 실시간 소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미국의 통합을 강조하고, 우리나라와 관련하여 동맹의 복원을 강조했다. 바이든의 취임사를 통해 미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와 그에 연동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는 바로 옆에 있고, 역사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일본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이를테면 스가 일본 총리의 새해 소감의 전문을 소개한 언론은 거의 전무하다. 단지 일부 언론에서 ‘도쿄올림픽 성공개최와 이웃 국가와 안정적 관계’라는 제목으로 소개했을 뿐이다. 이 새해 소감을 담은 기사 제목과 내용을 토대로 한다면 일본의 대외 전략이 아베 정권 당시 한국과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려는 것 같은 변화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하지만 해당 원문을 살펴보면 ‘국제 정세의 불투명이 증가’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동북아시아의 전쟁 위협이 증가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 아베 정권과 마찬가지로 대외 전략에 있어서는 변함없이 ‘미일동맹을 기축’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전략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소개한 신문에서 이야기한 ‘이웃 국가와 안정적 관계’를 구축한다는 기사 내용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변함없는 방위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역사적 유래는 1950년 1월 12일 발표된 ‘애치슨 라인 선언’(Acheson line declaration)의 변형이자, 일제의 ‘제국국방방침’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방위 전략의 핵심은 일본의 자유, 즉 안보가 위협을 받게 되면 일본의 영토가 공격받기 이전에 다른 지역을 전쟁터로 삼아 전쟁을 종결시키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반도 등을 완충지대이자 전쟁터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그 결과로써 그 후방에 있는 일본 영토는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주변국을 도외시한 일본 중심적 사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과 사고를 담고 있는 스가 총리의 새해 소감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핵심 방위 전략이 그들의 제국주의가 아시아를 휩쓸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일본 총리의 기념사를 더욱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을 상대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 대한 부정만큼 어리석은 행위는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이불 속으로 숨거나, 타조처럼 땅굴에 머리만 숨기고 보이지 않으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은 1904년 한일협약 체결 당시 고종이 대신들에게 국가의 안위를 맡기고 지병을 핑계 삼아 현장에서 도망쳐 버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조약의 체결을 격렬히 반대하다가 감금당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대신이 아니라 고종이 감금되었다면, 흔히 이야기하는 조약의 불법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역사적 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soothhistory@nah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