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67년 허송세월…무얼 더 논의? 납득 안돼"
유영민 "文, 박범계에 임명장 주며 속도조절 당부"
논란 커지자 당정 수습 애써…"언론 자의적 해석"
문재인 대통령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속도조절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안착도 전에 검찰의 수사권·기소권의 완전 분리가 핵심인 중수청 설치까지 추진하는 건 무리라는 의중이다. 하지만 여당 내 강경 검찰개혁파는 물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까지 반기를 들면서 '레임덕'의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추 전 장관은 24일 페이스북에 "국회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법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며 "어느 나라에서도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지고 심지어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고 있지는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추 장관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법전편찬위원회 엄상섭 위원은 우리나라도 '장래에 조만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함을 강조했었다. 그 '조만간'이 어언 67년이 지났다"며 "이제 와서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면 67년의 허송세월이 부족하다는 것이 돼버린다. 아직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 또한 어느 나라도 우리와 같은 검찰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무엇을 더 논의해야 한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 내 강경파의 의견과 같다. '행동하는 의원 모임 처럼회'는 전날 공청회에서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갖는 한 검찰개혁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며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했을 때 지금 하지 않으면 21대 국회에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의중과는 다른 맥락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앞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문 대통령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수사권 개혁의 안착을 말씀하셨고, 범죄 수사 대응 능력, 반부패 대응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문 대통령의 의중은 중수청 설치는 '시기상조'라고 해석됐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문 대통령이 박 장관에게 속도조절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유 실장은 "(검찰개혁과 관련한) 속도조절은 박 장관이 임명 받으러 온 날 문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당부했다"며 "그 부분은 민주당에서 충분히 속도조절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수청 설치를 두고 임기 말 당·청 갈등이 본격화되면,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리더십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해석이다.
레임덕 관측에 힘이 실리자, 당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운영위에서 유 실장의 발언에 "내가 그 얘기를 아는데,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하라 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도 "당청 간, 당정 간 이견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당이나 정부나 검찰개혁 방향은 함께 공유하고 있고 이견이 없다. 상반기 중 국회에 발의된 법을 처리한다는 방침도 확고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한 박 장관도 '속도조절론'은 언론의 자의적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법률안 처리) 과정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며 입장차가 있음은 인정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한 말씀 하시면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다 정리되는 게 과거 권위적인 정치 과정에 있었던 일"이라며 "지금 민주당이 훨씬 민주적이고 (이런) 민주적인 논의와 토의 과정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지사는 오히려 "정부 여당에서 대통령과 호흡을 잘 맞춰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추 장관 등이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방향에 반기를 든 건 레임덕 신호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하다"며 "레임덕 논란이 커지자 애써 당정이 '이견은 건강한 것'이라며 수습하는 꼴"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