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경영책임자 징역 하한선 남아…과잉처벌 논란 그대로
의무 범위 모호성, 중소기업·소상공인 예외 규정도 없어
여야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상 처벌 규정을 완화한 상태로 8일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과잉처벌 문제를 제기했던 재계는 최대 쟁점인 사업주·경영책임자에 대한 징역 하한선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업 경영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6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여야는 이날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중대재해법 최종안을 확정·의결할 방침이다. 여기서 확정된 최종안은 8일 본회의에서 처리된다.
앞서 여야는 전날 법안소위에서 중대재해법상 처벌 규정을 일부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경우 처벌 규정은 당초 ‘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이었던 정부안에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완화했다. 대신 벌금형과 징역형을 함께 선고할 수 있는 임의적 병과(倂科)를 추가했다.
법인에 대한 처벌은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50억원 이하 벌금’, 근로자가 부상을 입거나 질병을 얻은 경우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합의했다. 당초 정부안에 포함돼 있었던 벌금 하한선(사안별로 3000만원, 1억원, 5억원)은 삭제했다.
벌금 관련 처벌은 사업주·경영책임자나 법인 모두 완화됐지만 재계는 여전히 기업 경영에 큰 위협이 되는 독소조항이 남아있다는 입장이다. 최대 쟁점이었던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징역 하한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한선이 2년이 됐건 1년이 됐건 예측 불가능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무조건 경영자를 감옥에 가둬야겠다는 감정적 과잉처벌의 기조가 남아있긴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징역)하한형이 남아있는 것 자체가 과잉처벌”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아무리 안전 대책을 철저히 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경영책임자를 무조건 실형에 처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그동안 재계에서 징역형은 상한만 두는 방식으로 바꿔야 된다는 입장을 수없이 밝혔지만 결국 반영이 안됐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도 “벌금형 하한선이 폐지됐지만 징역형 하한선이 살아있고 병과(벌금·징역형 함께 선고)도 가능하게 돼 있다”면서 “다른 나라와 견줬을 때 상당히 센 편”이라고 지적했다.
양옥성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 역시 “사업장에서의 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는 일종의 과실치사인데 거기에 대해 마치 고의 살인과 같이 ‘징역 몇 년 이상’으로 하한형을 두는 것은 법체계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사업주·경영책임자나 법인의 의무 범위의 모호성에 따른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상호 팀장은 “의무 범위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불안감이 크다”면서 “준수할 규정, 법령 등이 많은데,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되니까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전승태 팀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관리감독자와 현장책임자의 의무와 역할이 명문화돼 있었지만, 중대재해법은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경영책임자의 책임으로 돌린다. 지킬 수 없는 의무를 주고 처벌하는 셈”이라며 “아무리 노력해도 처벌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졌다면 이 법의 목적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어려운 중소·영세 사업자들에 대한 예외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여야는 전날까지 50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유예조차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양옥성 실장은 “소규모 기업들은 설령 유예기간을 둔다고 해서 (유예기간 이후에) 법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고 여력이 안되는 부분을 지원해줘서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줘야 되는데 중대재해법은 과도한 처벌로 사업을 접게 만들겠다는 얘기 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건설협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10개 경제단체들은 이날 오후 2시 30분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의 최종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