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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국민사과 각오 굳혔다…반발 정면돌파


입력 2020.12.08 00:10 수정 2020.12.08 05:16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시기 봐왔지만 더 미룰 수 없다" 배수진 쳤다

친박·친홍 '발목' 잡히면 선거 '폭망' 반복 우려

"당대표가 안하니 결국 비대위원장이 하게 돼

정통성 있다는 홍준표·황교안은 과연 뭘했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대국민사과를 오는 9일 결행할 각오를 굳혔다.


더 이상 당내 일각의 반발에 발목이 잡혀서는 선거를 앞두고 그간 기울여왔던 노력이 모두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느낀 것으로 보인다. '정작 사과를 해야할 사람들이 사과를 하지 않아, 사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사과를 하게 된다'는 말도 나온다.


김종인 위원장은 7일 비상대책위원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그동안 시기를 봐왔지만 더는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사과를) 미룰 수 없다"며 "사과를 못한다면 더 이상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없다"고 배수진을 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비공개 최고위에서의 김 위원장의 발언은 당내 친박(친박근혜)·친홍(친홍준표) 잔당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저들 (좌파 586 세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덮어씌운 억지와 모함을 걷어내고 법과 원칙에 따른 재평가를 한 뒤에 공과를 논해도 늦지 않다"며 "지금은 (대국민사과의) 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당밖 홍준표 무소속 의원에 우호적인 세력으로 분류되는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이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본인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억울하다며 재판을 거부했다"며 "사과를 하려면 당사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역시 친홍계로 분류되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정통성 없는 임시 기구의 장이 당의 역사까지 독단적으로 재단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며 "절차적 정당성도, 사과 주체의 정통성도 확보하지 못한 월권"이라고 가세했다.


내년 4·7 재·보궐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같은 당내 일각의 반발에 발목이 잡혀 그간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면 선거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고 김 위원장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에서 "확실하게 변하겠다고 했지만 보여준 게 없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9일로 점쳐지는 대국민사과 계획은 최근 수 일간의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졌다. 김종인 위원장은 사과문 초안도 이미 써놓은 상황이다.


이제는 무를 수도, 미룰 수도 없는 국면인 것이다. 백지화나 연기가 되면 당 꼴이 우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당내 반발은) 알고 있으나,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대국민사과 결행 의지를 재천명했다.


당내 많은 의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103석 의원 중 대부분이 영남 지역구인 관계로 지역에서 목소리가 큰 '태극기 성향 당원'들의 입장을 고려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라면서도 "여기까지 온 이상, 뒤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의원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친박·친홍 잔당의 반발과 관련해서는 '사과해야할 사람이 사과를 하지 않으니,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사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70년 폴란드에서 이른바 '바르샤바 무릎사과(Kniefall von Warschau)'를 했다. 브란트 총리는 사민당원으로 나치에 의해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해외로 망명해 반나치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사실 나치의 전쟁범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사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브란트는 '무릎사과'를 결행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무릎을 꿇기 싫거나 감히 꿇지 못한 모든 서독인을 대신해 브란트가 무릎을 꿇었다"며 "자신이 감당할 필요가 없는 죄과를 고백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용서를 구했다"고 극찬했다.


이재오 고문의 말처럼 두 전직 대통령이 '당사자'로서 국민들에게 물의를 빚어 보수정당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과오를 진작에 진솔하게 토로했다면 애초부터 일이 이 지경에 이를 이유가 없었다.


또, 지난 두 정권에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호가호위했던 인사들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김종인 위원장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으며 일정 부분 박근혜정권 출범에 기여했으나, 대선 직전 이한구 전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에게 밀려나면서 사실 박근혜정권에서 호사를 누리거나 덕을 본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정작 사과를 해야할 인사들이 사과를 하기는 커녕 반발을 하고 나서니 비대위원장으로서 김 위원장이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는 설명이다.


'무릎사과'를 결행한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은 직후에 치러진 1972년 서독 총선에서 대승, 원내 1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였지만, 일어선 것은 서독"이었다는 말대로, 보수 세력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김종인 위원장의 대국민사과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통성, 정통성 하는데 정통성 있는 당대표가 안하니까 비대위원장이 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때는 인명진 위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했고, 5·18 비하 파동 때는 김병준 위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했다. 정통성 있다는 홍준표·황교안 대표는 과연 뭘했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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