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승계=불로소득' 인식…독일 헌재 "기업승계는 공공복리 증진 기여"
유럽연합 "사업승계는 창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 보존…어려움 없도록 해야"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우리 기업들의 영속성을 위협하고 국가 경제의 미래마저 뒤흔들고 있다. 기업 승계를 죄악시하는 징벌적 상속세율은 기업가정신은 쇠퇴시키고,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미래 산업 변화를 지휘할 컨트롤 타워를 끌어내리는 원흉으로 지목된다. 현행 상속세율의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우리 사회는 기업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진보진영은 기업승계에 대해 '불평등' 프레임을 씌어 부정적인 인식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10월에 상속세율 인하를 촉구하는 여론이 불거지자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상속세는 불로소득에 대한 사회적 환원과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고, 그저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과세"라고 주장한 것은 이같은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발언이다.
진보당 역시 논평을 통해 "부모가 번 돈이라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무한정 허용된다면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상속세법은 부의 대물림 근절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은 원활한 기업승계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성장,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적 경제 효과를 도외시한 것이라는 게 산학계의 지적이다.
산학계는 기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짐으로써 기술 축적과 원천기술 확보가 가능하고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돼 양질의 일자리 및 고용 창출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법제도를 참고해 상속세율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원활한 기업승계 보장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2위이고, OECD 평균 최고세율 25.3%의 2배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 할증과세'가 적용되면 실질 세율은 60%에 달해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특히 OECD 36개국 중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도입하지 않고 있는 국가는 13개국에 달한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23개국 중 직계비속에게 상속세율을 추가 인하하는 국가는 14개국이다.
김용민 진금융조세연구원 대표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속은 불로소득이라는 관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며 "상속세로 인한 국부유출, 고용감소, 성장둔화라는 경제적 손실은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 원장도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제대로 납부하고도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존속해 나갈 수 있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되겠냐"며 "현행 상속세제는 조세회피 유인만 높여 편법승계를 논란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독일, 일본, 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원활한 기업승계를 보장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유럽연합의 중소기업법 기업승계 관련 규정은 "성공적인 사업의 승계 및 양도는 신규 창업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보존한다"며 "기업의 승계는 창업과 동일한 수준의 정책적 지원이 요구되며 특히 조세문제로 기업 승계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구 상속세 법률조항들에 대한 위헌판결문에서 상속세 감면은 기업의 존속 및 일자리 보존이라는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하기 때문에 기본법 제3조 제1항(평등권)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독일 헌재는 판결문에서 "상속인이 높은 상속세 부담을 지면 대기업도 재정적 어려움에 빠질 수 있고 투자여력을 상실하거나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기업을 매각·해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대기업에 대한 상속세 감면 혜택도 헌법상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독일은 배우자 및 직계 비속에 대한 기업의 상속 증여 최고세율이 30%며 대기업도 요건에 부합하면 중소기업과 동일한 감면혜택을 부여한다. 기업의 상속 사업재산 중에서 최고 30%에 달하는 금액은‘사전 특별공제’ 형식으로 상속세 부과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울러 일본은 2017년 '사업승계 5개년 계획'을 확정하고 2018년 '특례사업승계세제'를 만들었다. 이 제도는 후계자의 사망일까지 증여세 및 상속세 전액에 대해 납세를 유예해 기업승계가 이뤄지는 시점의 세금부담을 덜어준다.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던 스웨덴은 다수의 기업이 승계를 포기하거나 해외 이전을 추진하자 2005년 상속 증여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대체했다. 자본이득세는 소득세 등 과세 후에 증식된 자본이득에 대해 30%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조세회피 유인을 감소시켜 상속세 대신 도입된 후 지역경제 발전과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더는 것은 경영을 잘 해오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해 경영불안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기업에 속한 근로자들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며 "상속 절차 자체로 기업이 경영권의 불안을 겪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 원장 역시 "기업승계는 고용과 기술의 대물림이자 기업가정신과 책임의 계승이고 제 2의 창업"이라며 "기업승계 과정에서 경영권 확보와 지배구조 구축에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