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합정역 인근데 160석 규모 공연장 개관
홍대 민간 공연장 85곳,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운영 중단 요구
서울 홍대가 ‘공연의 메카’라고 불리기까지, 1990년대부터 라이브 공연장과 밴드들이 함께 자생하며 문화생태계를 형성해오는데 힘썼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으로 인한 정부의 강도 높은 운영 규제와 높은 임대로 탓에 문을 닫거나 운영을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기관의 지원이 절실한 현 상황에 정작 서울시는, 오히려 문화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사업을 내놓으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공연장인 하나투어 브이홀을 비롯해 인디라이브클럽의 상징인 DGBD(구 드럭), 객석 500석 규모의 무브홀 등 6곳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 공연장들도 1/10 수준의 가동률로 평년대비 90%에 가깝게 매출이 줄어들어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그 와중에 서울시는 지난 4일 2호선 합정역 인근에 조성된 ‘서교동 역세원 청년주택’ 지하 2개층에 총 4423㎡ 구묘의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를 지난 4일 개관했다. 특히 이 안에는 160석 규모의 공연장과 밴드 합주, 무용 등 공연 연습이 가능한 4개의 연습실과 강의실, 커뮤니티실, 다목적실 등이 구비되어 있다.
이에 홍대 일대에서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켜온 민간 공연장 85곳의 소유주들은 서교 개관에 반발하고 있다. 홍대에서 25년간 공연장을 운영해 온 롤링홀의 김천성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 서울시가 160석 규모의 공공 전문 공연장을 개관하는 것은 더 이상 소상공인들이 홍대에서 공연장을 운영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공연 분야를 코로나19 특별 지원업종으로 지정해놓고 뒤로는 소상공인들과 경쟁하고 우리를 폐업의 길로 내모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공익과 주민자치 활동을 목적으로 한 공연을 대관비 부담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공연장은 공공성, 주민자치 성격을 띤 단체의 공연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상업적 목적을 위한 공연장이 아니다”라도 했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연습실과 강의실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공연생태계 파괴인가”라고 했다. 다만 “주변의 공연장들과 어떻게 어우러져 운영할지 대화를 통해 풀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프리즘홀 이기정 대표는 “서울시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역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과정이 빠졌다. 실제로 개관식날 처음으로 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저희 같은 업종(공연장 운영)에 피해가 간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면서 “이미 여러 공연장이 자리 잡고 있고, 규모에 맞게 대관료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홍대의 공연장 과밀 현상 속에서도 업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거대 공룡’이 저렴한 대관료를 내세우는 순간 연쇄적으로 가격 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던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는 이미 개관과 동시에 대관 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폐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막무가내로 폐관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홍대 지역에 수많은 기존 공연장들이 영업중인데, 공공기관인 서울시가 공연장을 개관하고 중복된 사용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것은 세금 낭비이자 잘못된 지역 선정이며, 실패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홍대공연장연합을 꾸려 서울시에 6일 두 가지 제안을 공문 형태로 보냈다. 이들은 서울생활문회센터 서교에 ▲연극·뮤지컬을 제외한 대중음악 장르의 기획 및 대관 금지 ▲공문 수신일 이후부터 본 안건에 대한 협상 타결까지 센터 운영 중지 등에 대한 답변을 11일까지 요구했다.
앞서 지난 9월 정부가 온라인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공표한 이후 대중음악 관계자들은 온라인 공연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정부에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어 왔다. 기존 공연장이 문을 닫고 있는 와중에 기존 공연장을 활용하는 등의 현실적 방안이 아닌, 새로운 공연장을 만드는데 신규예산 314억원이 편성된 것에 반발해왔다.
이번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의 공연장 대관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아티스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대관을 하주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홍대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 결코 성공적인 사업으로 남긴 힘들다. 이는 결국 주변 공연업의 생존권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서울시가 “주변의 공연장들과 어떻게 어우러져 운영할지 대화를 통해 풀어가겠다”고 밝힌 만큼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