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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이경미 감독, ‘보건교사 안은영’ 통해 배운 책임감


입력 2020.10.12 00:00 수정 2020.10.11 18:50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넷플릭스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이 지난달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동명의 드라마로 돌아왔다. 시즌1은 ‘미쓰 홍당무’(2008)로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를 그렸던 이경미 감독이 맡았다. 그는 전작인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공효진 분)과, ‘비밀은 없다’의 연홍(손예진 분)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정유미 분)도 독특하고 비범한 캐릭터로 만들었다. 분명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긴 하지만, 정세랑 작가의 원작을 재치 있게 영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감독임에는 분명하다. 넷플릭스라는 장점도 더 재치 있는 안은영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조금 더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어요. 넷플릭스 플랫폼이라 극장용 상업영화처럼 여러 가지 검열을 거치지 않아도 됐거든요. 이런 기회가 인생에 흔치 않을 텐데 ‘나도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해보고 싶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작업하면서 호불호가 나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어요. 저는 늘 호불호가 있었잖아요(웃음).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제게 주어진 기회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넷플릭스

◆ 명랑 판타지 소설, 오컬트 성장 드라마가 되다


작품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감독은 ‘보건교사 안은영’의 장르를 ‘명량 판타지 오컬트 성장 드라마’라고 정의했다. 원작에 있는 만화적인 요소들을 가져오면서, 그 안에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를 엮어냈다.


“소설을 읽으면서 앞으로 점차 히어로물로 발전시키기 위한 프리퀄로 성장드라마로 엮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게 생각하니까 제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능력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하던 사람이 주변 사람들의 사건을 함께 겪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성장드라마가 된 거예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링크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는 당시 이 감독의 감정과 상황으로부터 비롯됐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성장 스토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촬영을 한 달여 앞두고 중도하차까지 결심해야 했던 이 감독을 잡은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의를 위해서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이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스스로 만든 스토리가 자신에게도 가르침과 깨달음을 준 순간이었다.


“이 작품을 준비하던 당시의 나의 상태와 안은영이 비슷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모든 팀이 꾸려지고 촬영을 코앞에 둔 시점에 개인적으로 힘들고, 슬픈 일을 겪었어요. 모든 걸 중단하고 떠나려고 했지만, 이 작품을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책임감’ 때문인 것 같아요. 책임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의를 위해 어떤 책임을 져야할 때도 있다는 그 당시 제 감정이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를 움직이게 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안은영에 동화됐어요.”


이 감독에게 ‘보건교사 안은영’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연출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까지 덧대는 작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그는 명랑하고, 밝고 ,따뜻한 원작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찾아낸 죽음과 소멸에 대한 해석을 조화롭게 잘 엮어냈다.


“(정세랑 작가가) 4부까지 쓰신 각본과 원작 소설을 같이 받았어요. 소설은 에피소드별로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되어 있었고, 저는 이것을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로 구조를 재배치하고, 히어로물의 프리퀄 개념으로 가보자고 제안했어요. 또 밝은 소설 안에서 죽음과 소멸에 대한 것들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런 제 해석을 넣고 싶어서 제안했고, 제작자와 작가의 동의를 얻은 후에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정 작가가 많이 열어주셨고, 변하지 않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받아 그걸 반영하면서 완성을 했어요.”


‘보건교사 안은영’의 매력이 극대화된 건 음악의 힘도 컸다. 예측불가한 안은영의 이야기를 노래가 대변하기도 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동화적인 음악이 삽입되면서 묘한 중독감을 주기도 한다. 단순히 OST가 배경음악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이야기와 ‘함께’ 극을 이해시키는 또 하나의 장치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저와 늘 작업을 함께 해요. 이번에도 역시 작품을 해석하고 음악을 만드셨기 때문에 매번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하더라고, 제가 가지고 가는 결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림으로만 봤을 때는 캐치하지 못하는 것들은 음악이 캐치해주길 바라요. 제 욕심이 큰 건데, 음악감독님은 늘 그걸 만들어 오세요. 스태프끼리 공유하는 프리비주얼에서는 굉장히 웅장한 할리우드식 음악이 깔려 있었는데, 감독님이 ‘보건교사다 잽싸게 도망가자’는 노래를 만들지 누가 알았겠어요. 하하. 아마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건 장 감독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넷플릭스

◆ 이유 있었던 ‘찰떡’ 캐스팅


정유미는 원작자 정 작가와 원작 팬들, 그리고 이 감독까지 모두가 ‘안은영 1순위’로 꼽았던 배우다. 만화적인 얼굴과 기괴하지만 사랑스러운 표정을 능수능란하게 보여주는 정유미는 ‘안은영’ 그 자체였다. 이 감독 역시 “정유미가 아니었다면 안은영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반면 남주혁은 예상외의 캐스팅이었지만, 작품이 공개된 후 편견을 확실히 깨주면서 캐스팅에 대한 믿음을 주기도 했다.


“제가 참 운이 좋게도 매번 작업을 할 때 좋은 배우를 많이 만났어요. 특히 이 작품은 정유미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도 안은영의 광기어린 반짝이는 얼굴을 기억하고 떠올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유미는 그 자체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배우잖아요. 프리프러덕션 때 처음으로 시나리오 리딩을 위해 정유미, 남주혁 씨를 만났어요. 각본을 본 후 처음 만난 거라 매우 어색했죠. 이 어색함을 풀기 위해 첫 질문으로 ‘유미 씨 시나리오 어떻게 봤어요’라고 했는데,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어딘가를 보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나온 유미 씨의 만화 같은 표정이 재미있더라고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그래서 작품 속에서도 그 표정을 주문했던 거예요.”


“사실 저 역시도 홍인표라는 캐릭터는 한문교사니까 중년의 남성을 생각했어요. 넷플릭스 측에서 먼저 남주혁 씨를 제안하더라고요. 제가 실제로 좋아하는 배우거든요(웃음). ‘왜 내가 홍인표는 나이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라는 발상의 전환이 생기면서, 너무 좋아하는 배우라서 뛸 듯이 기뻐했던 기억이 있어요. 만나고 나니까 더 좋아져서 같이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두 주연 배우 외에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극의 재미와 긴장감을 담당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수많은 학생들도 각각의 캐릭터별로 그 매력을 십분 소화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특별출연한 문소리는 적은 분량에도 연기 내공에서 비롯된 강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일종의 학원물이랑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 새로운 신인을 발굴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디션을 굉장히 많이 봤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캐릭터에 어울린다는 영감을 얻는다고 느낄 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 영감을 주는 친구들을 캐스팅하게 됐어요. 또 생김새의 밸런스에도 신경 썼어요. 이 친구들의 얼굴이 참 다양하거든요. 외국인들이 봤을 때 ‘동양인들이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고요.”


“문소리 씨는 특별출연으로 부탁을 했어요. 감초처럼 등장하지만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서 굉장히 포스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소리 씨의 분량은 2회차 밖에 안 돼요. 시리즈물이다 보니까 굉장히 할 일이 많아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문소리 씨를 믿고 전적으로 맡겼는데, 다 만들어줬더라고요. 정말 감사해요.”


이 감독은 ‘안은영의 성장드라마’의 프리퀄 개념이라고 했던 것처럼, 시즌2를 위한 밑밥들을 이번 시즌에서 잔뜩 깔아놓은 상태다. 시즌1의 막바지에 안은영이 바닥을 쳤을 때의 감정은 다음 시즌에서 안은영이 성장할 수 있는 줄기를 올린 셈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말이다.


“아직 시즌2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 누가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대신 저는 시즌1을 통해 시즌2로 갈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 놨습니다. 하하. 누가 하든 너무 막연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노력했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요.(웃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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