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속 올해만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2.6조 발행
채권 이자 비용 연간 5조 넘어설 듯…기초체력 약화 우려
국내 4대 금융그룹이 올해 들어 장기 특수 채권을 통해서만 2조5000억원이 넘는 돈을 끌어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급격히 불어난 시장의 자금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차원으로, 결국 그 만큼 빚을 늘려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이들의 채권을 둘러싼 이자 출혈이 연간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면서, 코로나19 사태에 거대 금융 공룡들도 기초체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하나·우리금융 등 국내 4대 금융그룹들이 올해 들어 이번 달 까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 채권은 총 2조6000억여원으로 집계됐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긴 채권으로, 이런 특성을 살려 영구채로도 불린다. 또 후순위채는 다른 채권자들의 부채가 모두 청산된 다음에 마지막으로 상환 받을 수 있는 대신, 비교적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채권이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우선 신한금융은 이번 달 초 5억 달러 규모의 해외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최근 환율 기준으로 약 6000억원 규모다. KB금융도 지난 2월 4000억원의 후순위채에 이어 7월에 40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며 8000억원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하나금융 역시 올해 5월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했고, 우리금융은 지난 2월과 6월에 각각 4000억원과 3000억원씩 신종자본증권을 내놨다.
이 같은 금융그룹들의 경쟁적인 채권 발행과 이를 통한 자금 수혈은 시나브로 악화된 자본 여력 개선을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로 조사 대상 금융그룹들의 평균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 비율)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3.43%로 1년 전(13.66%)에 비해 다소(0.23%포인트) 낮아진 실정이다. BIS 비율은 은행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마련된 국제 기준으로, 자본 건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항목이다.
금융그룹들의 채권 발행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신종자본증권은 자본력 강화 측면에서 장점이 많은 수단이다. 신종자본증권은 발행하는 회사가 만기를 정할 수 있는 구조 상 회계 처리 시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책정되는 만큼, 이를 통해 금융사는 재무 지표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후순위채 역시 만기가 5년 이상이면 100% 자기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BIS 비율 개선에 유리하다.
특히 올해 들어 불어 닥친 코로나19 변수는 금융그룹들의 자금 조달 수요를 더욱 키우고 있는 요인이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을 강화하라는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를 위한 자금 확보의 중요성도 커지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에 따른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채권도 어디까지나 빚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신종자본증권은 자본력을 직접 끌어올릴 수 있는 대신 이자가 만만치 않은 채권이다. 누릴 수 있는 장점만큼 단점도 큰 셈이다. 이 때문에 과거부터 금융사들은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에 대해 통상 3%대 이상의 금리를 지급해오고 있다. 금융그룹들의 전체 자금 조달 금리가 1%대 초중반인 현실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가뜩이나 금융그룹들의 채권 이자 지출은 꾸준히 몸집을 불리며 연간 5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해당 금액이 올해는 5조원 마저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미 지난해 4대 금융그룹들의 채권 이자 비용은 총 4조7836억원으로 전년(4조442억원) 대비 18.3%(7394억원)나 늘어난 상태였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충격이 겹치면서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유래 없는 0%대까지 추락한 현실은 금융그룹들의 어깨를 한층 무겁게 만들 전망이다. 시장 금리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채권 이자율에 따른 부담이 커지는 모양새다.
한은은 올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지난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한은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0%대에 진입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금리에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금융그룹들의 실적은 당분간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이런 와중 장기 채권 발행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계속 불어날 경우 건전성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 있는 만큼, 속도조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