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상화폐 과세방안 내놓으면 '공식 금융자산' 인정될 듯
화폐로 통용되기까진 '먼길'…금융당국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
정부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 거래에 과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가상화폐의 '금융 제도권' 진입도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확정하면, 가상화폐도 엄연한 '금융자산'으로 인정받게 된다.
24일 금융권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달 발표 예정인 내년도 세법개정안에 가상화폐 거래로 발생한 이익에 과세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과세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 3월 국회에서 암호화폐 등을 제도권에 편입하는 내용의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가상화폐 거래 차익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상태다. 법안은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법안이 시행되면 가상통화 등을 가리키는 용어는 '가상자산'으로 통일된다. 가상자산 취급업소는 신고의무가 생기고,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실명확인 입출금계좌 사용, 고객 확인도 해야 한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이용자별 거래 내역을 기록·보관하고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이에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이용자별 거래 내역을 보고받고 관리하는 등 새로운 과제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거나 금융시장으로 진입시킨다기 보다 '가상자산'으로서 관리 대상에 편입된다"로 규정된다. 금융권에 새롭게 태동하는 블록체인과 맞물려 있지만, '가상화폐=골칫덩어리'라는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다.
금융당국은 기존에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금융회사 등에 포함되지 않아 거래정보를 확보할 법적 근거가 없었는데, 법안 시행에 따라 고객 확인의무 등을 통해 신원 정보를 확인함으로써 자금세탁 등 문제를 감시‧감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개인 간의 거래 등을 파악이 어려운 데다 음성적인 거래나 재산증여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가상화폐 '관리'가 우선인데 '과세'부터 할 판" 우려도
당장 업계에선 혼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경우, 사전에 투자자들의 거래정보를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동안 가상자산 거래는 주식 시장처럼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관리 방안을 순차적으로 내놓는 것이 아닌 '조세 목적'에 두고 성급하게 진행한다는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가상화폐는 실제 지폐나 동전처럼 실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온라인에서 가상으로 거래되는 '화폐'다. 2009년 비트코인 개발 이후 수천가지 가상화폐가 개발돼 거래되고 있지만, 달러처럼 정확한 거래량이나 가치 등을 평가할 수 없었다. 이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가상화폐를 공식 금융자산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가상화폐가 법화(法貨)가 되기 위해서는 가치저장, 가치척도, 교환 등 3대 화폐 기능을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가능하지만, 온라인 화폐로 인정을 받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유예기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와 본질은 다르지만, 유로화의 경우, 1999년 '가상통화'로 도입돼 3년 뒤인 2002년 정식 통용됐다.
한편 최근 가상화폐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올해 3월 중순만 하더라도 600만 원대였지만 이달에는 1000만원 선을 가뿐히 넘기며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세는 23일 오후 기준 115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선 비트코인 가격 상승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각국의 재정확대 정책이 원인으로 꼽히며 '디지털 금'으로 입지 확인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비트코인이 '금'처럼 중앙은행의 발권력과 무관하게 발행 총량이 제한돼 있어 유동성이 풀리는 시기에 오히려 희소가치가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무섭게 상승하면서 금융당국도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라며 "2017년 비트코인 광풍 때처럼 성급하진 않겠지만, 음성적 거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손 놓고 있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과세보다 시세 차익을 노린 과도한 투기를 막고, 그에 따른 피해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