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카드에 LG전자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대형주 4%까지 하락
일부 소재종목, 수혜 기대감에 17%↑…전문가 “한국 과잉 재고 소진 효과”
일본 수출규제 카드에 LG전자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대형주 4%까지 하락
일부 소재종목, 수혜 기대감에 17%↑…전문가 “한국 과잉 재고 소진 효과”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장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일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로 한국과 대립 중인 일본 정부는 이달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한국 수출을 규제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코스피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전장 대비 0.85% 하락한 4만6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LG전자는 3.28% 떨어진 7만6700원, LG디스플레이는 전일 대비 1.96% 내린 1만7500원에 각각 마감했다. SK하이닉스(0.72%)는 소폭 상승했다.
이날 주식시장은 지난 주말 주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협상이 재개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등의 호재가 쏟아지며 기대감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후 한·일간의 외교 관계 악화가 경제 분야로 옮겨갈 것이란 우려가 부각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당분간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관련주의 주가 흐름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일본 언론은 지난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이달부터 반도체 핵심 소재 3종 한국 수출에 대해 엄격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강화된 수출 규제는 오는 4일부터 적용된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 성격이다.
제재 대상은 TV와 스마트폰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 재료로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와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이다. 레지스트의 경우 일본 기업의 세계 점유율은 90%에 달하고 에칭가스도 90% 전후로 알려졌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들 품목을 일본에 의존해왔다.
그동안 한국은 절차 간소화 등 우대 조치를 받아왔지만 이번 조치에 따라 앞으로는 약 90일이 소요되는 허가 신청과 심사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통신은 한 달 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첨단재료 등의 수출에 관해 허가신청이 면제되는 ‘백색 국가’ 대상에서도 한국을 다음 달 1일부터 제외키로 했다.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G20회의와 북미정상회담만 놓고 보자면 분명 긍정적이지만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한 것은 부정적”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의 전체 수입 중 일본 비중은 2000년 20%, 2010년 15%에서 최근 10% 수준으로 빠르게 낮아졌다. 하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 의존도는 여전한 관계로 일본의 소재·부품의 수출 규제는 생산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아직 더 구체적인 제재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해당 품목들이 반도체, TV 및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부품 생산이 필수 소재인 만큼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미·중 보호무역 협상 재개, 북미정상회담으로 한국 주식시장의 소외현상이 일부분이나마 덜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에 더 촉각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시장은 보호무역 긴장감 완화와 통화완화로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할 전망이지만 한국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업계 관계자들과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해당 품목의 공급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다만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일본의 규제가 현실화 될 경우, 반도체 사이클 바닥 시점을 앞당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보도된 대로 수출 규제 조치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전면적인 수출 제한보다는 절차적인 측면에서 불편함을 주는 선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소재 기업 역시 주요 고객인 한국 대기업으로의 판로가 막히게 되면 실적 타격이 커져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애플, HP, 델 등 미국 주요 업체들의 피해도 불가피하다. 이 경우, 미·중이 무역 갈등을 간신히 봉합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이 나서서 판을 깨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놓인다.
이 연구원은 “일본의 제재가 있더라도 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며 “또 규제가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재고 부담이 큰 국내 메모리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감산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 반도체 사이클 바닥 시점을 앞당기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시행 기간이 장기화되지 않는다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 및 주가에 큰 악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업체 제조사 및 소재 업체에 수혜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양재 KTB투자증권연구원은 “최악의 경우 국내 제조사 단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지만 현재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급은 공급 과잉 국면”이라며 “이번 이슈는 국내 제조사가 과잉 재고를 소진하고 생산 차질을 빌미로 가격 협상력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 가능하다”고 짚었다.
국내 생산 차질에 대한 일본 반사 이익도 부재하다고 봤다. 일본 업체는 경쟁력 상실로 시장 점유율 확대 여력이 없고 국내 제조사와 소재 업계도 일본 수입 심사 기간을 견딜 재고를 보유한 상태다. 이에 따라 김 연구원은 오히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의 수혜를 예상했다. 국내 소재 업체 입장에서도 한국 제조사의 중장기 국산화 수혜가 전망된다는 평가다.
이날 일본 제품 대체 기대감에 일부 소재 업체 주가는 강세를 보였다. 동진쎄미켐(17.91%), 후성(9%) SKC 솔믹스(8.81%), 하나머티리얼즈(2.41%) 등이 일제히 상승했다.
일본 제재 이슈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반도체주의 투자 심리에 더욱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 반도체 대형주 투자심리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며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가능성이 자충수가 아니라 무역갈등에서 협상용 카드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일본도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를 길들이기용,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일본은 반도체 선단공정용 소재를 한국으로 수출하지 않으면 대만 외에 수요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위 뉴스보다 무역 갈등 완화를 암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반도체 대형주의 투자심리에 더욱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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