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업계 자승자박" 종신보험 외면하는 소비자들
올해 상반기 초회보험료 2853억…전년比 39.5%↓
경기 불황에 소비 위축…고객 불신 더해지며 발목
종신보험 판매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끝 모를 경기 침체에 지갑 사정이 나빠지면서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비싼 상품 가입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그 동안 생명보험사들이 종신보험을 두고 벌였던 무리한 영업에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탓도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험사의 재무 부담을 키울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종신보험을 적극 팔아야 하는 시점에서 생보업계가 자승자박에 빠진 모양새다.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24개 생보사들이 종신보험에서 거둔 초회보험료는 2853억원으로 전년 동기(4718억원) 대비 39.5%(1865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고 처음 납입하는 보험료로 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성장성 지표로 활용된다.
회사별로 봐도 주요 생보사의 종신보험 판매 실적이 일제히 떨어졌다. 삼성생명의 종신보험 초회보험료는 288억원으로 같은 기간(523억원) 대비 44.9%(235억원) 줄었다. 한화생명은 1150억원에서 571억원으로, 교보생명은 336억원에서 280억원으로 각각 50.4%(579억원)와 16.5%(56억원)씩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764억원으로 가장 많은 종신보험 초회보험료를 기록한 NH농협생명 역시 1년 전 같은 기간(1133억원)과 비교하면 32.6%(369억원) 줄어든 액수다.
계약 규모로 봐도 종신보험 판매 성적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올해 1~6월 계약 금액 기준 생보업계의 종신보험 신계약은 총 42조5590억원으로 전년 동기(47조5538억원) 대비 10.5%(4조9948억원) 감소했다. 신계약 건수도 같은 기간 86만755건에서 80만3824건으로 6.6%(5만6931건) 줄었다.
이처럼 종신보험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이유로는 우선 계속되는 내수 불경기가 꼽힌다. 종신보험은 특성 상 가입자의 가격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다른 보험 상품들보다 비교적 소비 위축에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다. 상해보험이나 암보험, 질병보험 등은 보장과 관련 보험 사고가 발생해야 보험금이 지급되지만 종신보험의 경우 언젠가는 발생하는 가입자의 사망에 대한 보장이 담겨 있어 보험료가 비쌀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영업 현장에서는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종신보험에 대한 불신이 새로운 가입차 유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배보다 배꼽을 강조하며 종신보험을 연금이나 저축성 상품처럼 판매해 온 생보업계의 잘못된 관행이 알려지면서 가입을 꺼리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상품은 연금 전환형 종신보험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망을 보장하는 종신보험으로써 보장성 상품에 속한다. 다만, 보험 가입자의 의사에 따라 나중에 연금처럼 활용할 수도 있어 연금 전환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에서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종신보험으로 불린다.
문제는 설계사 등 현장 영업인들이 연금 전환 기능을 강조하는데만 집중, 종신보험을 연금 상품처럼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 같은 종신보험들이 최소로 보장하는 금리인 최저보증이율이 다른 종류의 상품들보다 높다는 점을 앞세운다. 하지만 연금으로 전환 시 최저보증이율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더욱이 보장성 보험이기 때문에 중도 해지 시 그 동안 냈던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금 전환형 종신보험을 연금이나 저축성 상품으로 오인하고 가입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종신보험은 생보업계 불완전판매의 주범이 된 현실이다. 불완전판매는 금융사가 고객에게 상품의 기본 구조나 자금 운용, 원금 손실 여부 등 주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판매한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종신보험의 신계약 건수 대비 불완전판매비율은 0.39%로 생보업계 전체 상품 평균(0.17%)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이는 연금보험(0.27%)이나 치명적질병(CI)보험(0.22%), 어린이보험(0.15%), 암보험(0.15%), 저축보험(0.10%) 등 어떤 상품에서보다 높은 불완전판매비율이다.
애가 타는 쪽은 생보사들이다. IFRS17 적용이 다가오면서 종신보험 판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현재의 회계 기준 상 보장성 상품은 판매 첫해 보험사에게 손해를 발생시키지만 2021년 IFRS17이 도입되면 오히려 이익이 나게 된다. 반면 과거 생보사들이 경쟁적으로 팔았던 자축성 상품은 판매 시점부터 보험사에게 손실을 안기게 된다. 생보사들이 보장성 보험 중에서도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상품인 종신보험 영업에 힘을 쏟고 있는 배경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료가 비싼 종신보험을 가지고 종신보험이 아닌 것처럼 영업을 벌이던 관행으로 인해 해당 상품을 내밀면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IFRS17 시행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종신보험 판매 수요가 한창 불어났을 때 자신들이 만든 악습에 생보사들이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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