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의약품 관리' 도마위…불법거래 단속 손놓은 정부
희귀·필수약 관리 미흡…제품 변질과 파손은 소비자에 전가
의약품 불법 거래도 성행…식약처장 "현실적으로 차단 어렵다"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허술한 의약품 관리 시스템이 잇따라 도마에 올랐다. 희귀·필수의약품은 적합한 방식으로 공급되지 않아 변질 우려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고, 낙태유도제와 같이 전문의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까지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국감에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의 공급 관리 실태를 공개했다. 이 센터는 국내에서 구입하기 어렵거나 긴급하게 도입해야 하는 희귀의약품과 필수의약품을 환자 대신 수입해 보관·조제한 뒤 공급하고 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센터는 지난 2년 8개월 간 냉장 보관하는 의약품 9470건을 퀵이나 일반택배로 배송했다. 전체 냉장보관 의약품 1만557건 중 89.7%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백신 등 생물학적 제제 의약품도 3666건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생물학적 제제를 포함한 냉장보관 의약품은 온도와 습도를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의약품이 변질될 경우 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자가면역 질환 관련 의약품 '키너렛'은 KTX 특송을 이용해 대구로 배송되던 중 아이스박스의 아이스팩 냉기가 약해 변질 문제가 있었고, 2012년 1월 뇌전증 치료제인 '자론틴'은 배송 및 보관 중 온도상승으로 인해 연질 캡슐 제형이 파손돼 폐기된 사례가 있었다.
배송뿐 아니라 보관 과정도 부적절했다. 센터는 평소 의약품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 일반 사무실에 쌓아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무실 내부 온도는 섭씨 30도 가량으로, 약전에 규정된 의약품 상온 보관 기준인 15~25도를 크게 웃돌았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배송 과정에서 의약품 변질 등의 사고가 날 경우 환자가 센터 측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가 지불한 약값의 일부를 센터의 업무추진비, 인건비 등 관리운영비로 써 온 것도 논란이 됐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센터에 누적된 의약품 공급차액이 68억5500만원인데 이 중 64.2%인 44억200만원이 이같은 관리운영비로 쓰였다. 공급차액은 대량구매로 인한 할인이나 저가 낙찰 등으로 의약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면서 발생한다.
정 의원은 "사실상 환자의 돈으로 센터가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의약품 등을 대신 구매하면서 남은 돈을 관리운영비로 쓴 것은 문제"라며 "차액을 환자에게 돌려주기 어렵다면 희귀질환 환자를 위해 공익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식약처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하고, 오는 29일 종합감사 전까지 결과를 보고할 것을 주문했다.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식약처 국감에서 의약품 불법거래를 막을 대책을 요구했다. 신 의원 측은 낙태유도제 미프진을 SNS로 구매하는 과정을 공개하고 "직접 구매 상담을 해보니 임신 7주 이상이면 59만원에 지역에 따라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프진 온라인 거래가 갈수록 성행하고 있다면서 "낙태유도제뿐 아니라 원칙상 온라인에서 거래할 수 없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여드름약 등도 온라인으로 살 수 있었다"고 질타했다.
신 의원에 따르면 온라인 상의 의약품 불법 거래는 성행하고 있지만, 식약처에서 의약품 불법거래를 경찰에 신고하는 건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식약처가 지난 2월 사이버 수사기구를 발족했으나 이마저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앞으로 여러 기관과 공조해 관리를 잘하겠다"면서도 "SNS의 특성상 개인 간의 거래를 일일이 막기 어렵고, 해외에 서버를 둔 업체가 있어 모두 차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 의원은 이에 "경찰청이나 국제기관의 협조를 얻어 불법 거래 서버를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며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국민건강을 보호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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