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칼럼>트럼프의 거래술도 북의 변설 변검에 못미쳐
돌아가는 폼페이오의 뒷모습에 김정은 미소 띄울 것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관계 설정과 관련된 문제들과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해 포괄적이고 깊이 있고 진지한 의견을 교환 했다.”
지난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김정은 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의 한 부분이다.
“싱가포르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은 장구한 세월 지속돼 온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하고 긴장한 정세가 조성돼 온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해 나가는 데서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은 역사적 장거, 세기적 사변으로 아로새겨졌다.”
이는 북한 노동신문이 1일 ‘세계평화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세기적 사변’이란 제목의 정세론 해설 한 대목이다. '뉴시스'가 인용보도한 데 따르면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김정은이 더 고단수일 텐데
“싱가포르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은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무적의 군사강국인 우리 공화국의 무진 막강한 국력과 전략적 지위가 내외에 과시되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밑에 북남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이 이룩되고 있는 속에 진행된 것으로 해 평화와 번영, 통일에로 향한 조선반도의 현 정세흐름을 보다 힘 있게 추동한 중대한 계기로 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6일께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북한 측의 정상회담 평가인 셈인데 상투적인 표현 양식 속에 자신들의 의도를 그대로 담았다.
‘조선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무적의 군사강국인 우리 공화국의 무진 막강한 국력과 전략적 지위’,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밑에 북남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 따위가 주는 느낌이 그렇다. 폼페이오의 방문을 앞두고 정상회담의 의미를 한껏 치레하면서도 향후 협상의 고삐는 미국이 아니라 자신들이 쥐고 있다는 뜻이다.
역시 ‘북한은 북한’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장담컨대 폼페이오가 평양에 가서 확인하게 될 것은 말의 성찬과 행동의 지연일 것이다. 그간 계속 지적되어온 것이지만 싱가포르 회담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선언일 뿐이었다. 설령 두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약속이나 거래가 있었다고 해도, 김정은이 부인할 경우, 입증할 방법이 없다. 힘은 트럼프가 가졌다 해도 시간은 김정은 편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화려한 개인기로,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를 거둘 것처럼 큰소리를 쳐왔지만 김정은이 더 고단수일 수 있다. 이런 유의 협상 혹은 거래에서는 오히려 북한 측이 더 노련하고 교활하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는 집권한지 1년 반도 채 안 됐지만 김정은의 집권기간은 6년 반에 이른다. 김일성 김정일의 협상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경우 북측의 숙련 기간은 70여년에 이른다.
트럼프가 세계적인 기업인으로서 탁월한 거래의 기술을 가졌다고 하지만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해 본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트럼프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북한의 술수에 넘어갔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화려한 변설(辯舌)‧변검(變臉:순간적으로 가면을 바꾸는 마술)의 기술을 발휘하는 교활한 상대를 이겨내고 굴복시키기란 지난한 일이다. 어떤 면에선 돌무더기 속을 헤집고 다니는 도마뱀 잡기와 유사한 측면도 있다. 꼬리라도 잡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물론 잘라버리고 도망가겠지만….
항구적 평화체제 어떤 건가
레토릭의 허황함도 회담의 성과를 낙관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 체제’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 수 있을까? ‘평화’가 ‘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면 휴전 후 65년은 평화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걸 ‘평화’라고 하는 것은 극히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다. 모두가 평온하고 화목한 가운데 행복한 삶을 구가하며 즐겁게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평화를 운위할 수 있다.
우리와 북한의 체제는 전혀 다르다. 게다가 북한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전체주의적 1인 지배체제, 포악한 독재체제다. 이런 상이한 두 체제가 ‘항구적’ 평화체제 하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북한 체제의 속성은 굳이 따져보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노동신문의 표현들이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무적의 군사강국’ 운운하는 허장성세를 그들은 벗어던지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허사(虛辭)를 진실이라고 우겨대고, 마침내 스스로 그렇게 믿는 경지에 이르고자 안간힘을 쓴다. 이미 그들은 싱가포르 회담이 김정은의 위대한 승리였다는 전설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대가 핵무기와 핵시설을 폐기하고 국제사회의 선량한 이웃으로 등장하게 된다? 꿈도 야무지다. 그냥 꿈이 아니라 백일몽이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독재자는 국토가 점령당하고 자신이 포로 신세가 되기 전엔 남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북한은 인구 2500만 명의, 크다면 큰 국가이다. 그곳에서 사이비 신(神)의 지위에 올라 온갖 권세를 마음껏 휘두르는 김정은이 트럼프의 위세에 눌려 시키는 대로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시간이 가면 핵보유는 기정사실화한다. 그런 다음엔 미국과 핵보유국끼리의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짧게는 2년여, 길게 잡아도 6년여가 지나면 대통령직에서 떠난다. 그에 비해 나는 종신의 통치자다. 변칙 스타일이라면 나도 트럼프 못지않다. 왜 겁을 내겠는가.” 김정은의 계산과 자신감을 추측하자면 그렇다.
그런데도 그의 선의를 한사코 믿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그 안보국방 참모들이다. 미국이 압박하지 않고 우리가 협력을 아끼지 않으면 북한은 평화애호, 인권 중시 집단으로 탈바꿈하게 되리라 확신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러기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고위급회담, 체육회담, 적십자회담, 철도·도로 협력 분과 회담 등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4‧27 판문점 합의’를 이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생각조차 않는 눈치다. 화수분이라도 생겼다는 것인가?
적어도 안보국방정책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2인3각의 관계에 있는 인상을 주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언론이 전했다.
멈출 줄 모르는 공개 총살형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은 3대 세습 수령제와 사회주의 경제체제, 즉 ‘주체 경제’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것은 주권 보장과 내정 불간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6월 27일 동아시아 재단 주최 제주포럼에서)
북한이 뭐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지 않느냐. 그 소박한 요구를 못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 이런 뜻으로 들린다. 수령제나 주체경제는 그렇다하더라도 ‘내정 불간섭’이라는 표현은 흘려듣기 어렵다. 인권문제나 폭정 같은 것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것인데 북한의 주문을 핑계 삼은 문 특보의 의견처럼 들린다. 인권의 탄압과 말살은 내정이 아니다. 이것만은 국제사회가 절대로 용인해선 안 된다고 왜 말하지 못하는가.
문 특보는 또 최근 펴낸 대담집 ‘평화의 규칙’에서 이런 말도 했던 모양이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조약과 협정보다는 평양을 비롯해 북한의 주요 도시에 맥도날드 햄버거 점포가 개설되고 스타벅스가 들어가고 미국과 일본, 유럽 관광객 수만 명이 북한을 여행하는 상태가 훨씬 더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담보해주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가 조약과 협정을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표현한 것이 어이없다. 아마 북한 김정은 집단의 인식이 그럴 것이다. “조약이든 협정이든 강요할 테면 해봐라. 우리가 찢어버리면 그만이지!” 그 같은 북한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인가. 조약이나 협정이 그런 의미 밖에 못 갖는다면 왜 문재인 대통령은 4‧27판문점 합의서라는 것에 서명하고, 그 문서에서 10‧4선언 합의 이행을 강조했다는 것인가.
미국의 정보기관은 김정은 집단이 싱가포르 회담 후 지난 몇 개월간에도 농축우라늄 생산을 늘려온 것으로 판단한다는 보도다. 또 지난 4월 10일, “이제는 허리띠 조이며 로케트나 핵무기 만드느라 고생 안 해도 된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현주성 인민무력성 후방국 검열국장(인민군 중장)을 권총 동시 집중사격(90발)으로 처형했다고 데일리NK가 전했다.
어느 부분에서 북한의 변화를 찾을 수 있는가. 북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현 체제를 유지하는 한 앞으로도 결코 달라질 수 없다. 그게 북한 체제의 구조적 본질적 한계다.
그래서 말인데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이 이번 북한 방문에서 얻어올 성과라면 미군 유해를 인수받아 오는 정도가 아닐까. 더 보탠다고 해봐야 교묘하게 둘러대는 비핵화 지연 핑계나, 거짓임이 뻔한 향후 계획을 듣고 오는 게 고작일 것이다. 폼페이오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정은과 그 부하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우리라는 점 또한 장담할 수 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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