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력자 실손보험 등장 전부터 실효성 논란 '시끌'
금융당국, 치료 이력 있거나 만성질환자도 가입되는 실손보험 출시 추진
"고객 비용부담 크고 보험사도 실익 없어…정책보험 잔혹사 재현될 것"
금융당국이 치료 이력이 있는 유병력자나 경증 만성질환자도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실손의료보험 상품 출시를 추진하기로 했다. 실손보험이 3300만여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국민보험으로 불리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지금까지 가입을 거절 당해온 국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고객과 보험사 양쪽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되지 않는 상품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유병력자 실손보험은 등장 전부터 거센 실효성 논란에 직면하고 있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4월을 목표로 유병력자 실손보험 상품 출시를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가입 요건을 대폭 완화한 유병력자 전용 상품을 내놓음으로써 기존 실손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설명했다.
현재 보험사들이 판매 중이 실손보험은 저렴한 보험료로 대다수 필요한 의료비를 보장하면서 다수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치료 이력이 없고 건강한 경우에만 가입이 가능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기존 실손보험은 가입 시 병력 사항과 임신·장애 여부, 위험한 취미 유무, 음주·흡연 여부, 직업, 운전 여부, 월소득 등 총 18개 사항을 심사한다. 반면 유병력자 실손보험은 병력 관련 3개 사항과 직업, 운전 여부, 월소득 등 6개 항목만을 심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최근 2년 간의 치료 이력만 심사하도록 해 유병력자의 실손보험 가입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5년 간 발병·치료 이력을 심사하는 중대질병도 기존 10개에서 암 1개로 축소된다.
문제는 유병력자 실손보험의 자세한 상품 구조를 뜯어볼수록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는 면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가입이 용이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험료가 상당히 비싸고 보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주요 비급여 진료를 보장하지 않아서다.
금융위가 공개한 보험개발원 추정 자료에 따르면 50세를 기준 유병력자 실손보험 상품의 보험료는 남성 3만4230원, 여성 4만8920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실손보험보다 50% 이상 비싸다. 더욱이 유병자들 대부분이 고령자하는 점에서 보험료 갱신까지 고려하면 부담은 더욱 클 전망이다.
또 유병력자 실손보험은 기존 실손보험의 기본형만 보장하므로 ▲도수치료·체외충격파·증식치료 ▲비급여 주사제 ▲비급여 자기공명장치(MRI) 촬영 등 3대 비급여 항목은 보장받을 수 없다. 치료비를 받더라도 보장 대상 의료비의 30%를 고객이 부담해야 한다. 또 최소한 통원 외래 1회당 2만원, 입원 1회당 10만원은 내야한다.
보험사들 입장에서도 유병력자 실손보험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는데다 관련 데이터도 없어 위험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들이 판매를 기피하게 될 경우 유병력자 실손보험은 시장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할 공산이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추정치로 나온 유병력자 실손보험료도 비싸다는 지적이 있지만 실제 상품이 출시되면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이 책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보험사들이 저가에 상품을 내놓을 경우 결국 구색 맞추기에 그치면서 유명무실화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보험사들은 금융당국 눈치를 보며 유병력자 실손보험을 마지못해 출시하겠지만 손해를 감수하며 판매할 이유가 없고 팔더라도 득이 되지 않으므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정책성 보험들은 당초 취지와 달리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안타깝지만 유병력자 실손보험도 초기에만 반짝할 뿐 시간이 지나면 성과 없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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