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대위기-5 인터뷰] "한미동맹에 걸려 있는 국가이익이 가장 크다"
김태우 교수 "동맹 무너지면 경제도 통일도 없다"
"사드, '새발의 피'라도 방어는 다다익선"
외교·안보전문가가 진단하는 한국 외교의 대위기와 극복 방안
"한국, 외교적 고아 상태…권한대행이 컨트롤타워 역할해야"
탄핵정국으로 외교리더십의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외교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한미관계는 여러 위기 요인을 안고 있고, 한중·한일 관계도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롭다.
동아시아 지역 패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국과 중국의 신(新)냉전 구도 속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날로 커지고 있는 형국에서 우리 외교가 그야말로 '수렁'에 빠졌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변국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문제들로 외교적 다툼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김태우 건양대학교 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지금의 상황을 두고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지금 외교적 고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패권국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부재하더라도 외교·안보 분야는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며 "지금으로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외교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감히 대통령 행세를 하느냐'며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권한대행이 대통령 행세를 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트럼프시대 불확실성 증대…북핵 해결 5가지 선택지
-지난 2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다. 트럼프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트럼프 행정부 자체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사상 최저 지지율을 가지고 출범했고,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일고 탄핵운동도 시작됐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정식 절차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다시 내려오는 상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단 트럼프 정부가 순항한다는 전제 하에서 정책적인 불확실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정책은 여러 분야의 불확실성 중에서 한 분야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는 경제대로, 외교는 외교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다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역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안보와 경제에서의 불확실성이다."
-안보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 경제에서는 한미 FTA 재협상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한미동맹의 위기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시절부터 한미 FTA를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실패작'이라고 폄하했고, 취임 이후에도 반(反)FTA 기조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속적이고 규모가 큰 대미 흑자와 환율 조작 여부를 문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제 분야에서의 위기 도 우리가 넘을 파고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보다.
우선 유세 기간과 당선 이후를 모두 합쳐보면 트럼프는 계속해서 공정한 안보비용 부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나토(NATO),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일본, 한국을 실제로 거명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안보 비용 부담 문제가 한미 간 새로운 협상거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대응책이 마련돼 있느냐다.
안보 분야와 관련해서 좀 더 덩치가 큰 것이 북핵 문제다. 트럼프의 북핵 기조가 과연 어떨 것인가. 유세기간 중 트럼프는 북핵과 관련해 굉장히 상반되는 이야기를 했다.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며 대화하겠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핵 장난은 가만두지 않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부터 취임 때까지 오면서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가 위중하다는 쪽으로 발언이 모아졌고, 안보 분야의 참모들도 '북핵문제가 심각하다', '우선적인 문제다', '한미 간 공조를 이어가야 한다'며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은 우리로서는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핵 문제와 관련해서 트럼프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과 내정된 안보부서장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과 관련해 취할 수 있는 옵션은 5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빅딜, 두 번째는 중국을 압박한 북핵 해결,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한 직접 제재 강화, 네 번째는 선제공격, 다섯 번째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다. 이 5가지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올라올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 어떤 것도 당장 핵 해결을 가져올 수는 없다고 본다. 그게 우리의 딜레마다."
북미 간 직접대화 타결 가능성 '희박'…대북압박 기조 유지될 듯
-'빅딜'이라면 북미 간 직접 대화라는 것인데,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시도될 가능성은 있지만, 타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화협정이다. 이 두 가지 요구조건은 지금까지 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일관되게 북한이 주장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미국이나 한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했던 것은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였다. 즉, 지금까지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북한에 요구했던 것이다. 한국의 입장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래서 지금 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두 번째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평화협정이다. 듣기에는 굉장히 좋은 이야기다. 미국과 북한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없애겠다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다음이 굉장히 무섭다. 북한이 분단 이후 줄기차게 바라온 소원이 있다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다. 한반도가 위태위태하면서도 결국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버팀목에는 동맹이 있었던 것이고 이를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자고 한 뒤에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지는 너무나도 뻔하고, 그것을 한국도 미국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핵동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미국이 북핵에 대해 피로를 심하게 느낀다면 핵동결로의 타결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표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려에 불과하다. 북한이 질기게 나오니 가진 것은 인정하고 더 이상 핵 활동을 하지 말라는 선에서 핵문제를 덮고 넘어가보자는 것인데, 그러나 이것은 불완전한 핵 해결이다. 북한은 핵을 가진 나라, 한국은 핵을 갖지 않은 나라라는 일방적 취약성 상태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가 가져올 부작용은 너무나 많다. 계속해서 북한은 핵을 앞세워 한국을 협박할 수도 있고, 핵을 믿고 국지도발을 더 쉽게 저지를 수도 있고, 변화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남북 상생이나 통일정책도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남북관계 구도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굉장히 조심해야할 부분이고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안보부서 수장들은 대부분 군 출신의 매파 성향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됐다. 이런 점에 미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예상해본다면.
"안보 관련 주요 부서의 장이라면 국무장관, 국방장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될 텐데, 하나 같이 다 강경보수 인사에 백인, 친기업, 반이슬람, 친이스라엘 성향이다. 여러 성격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강경보수 색채가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북핵에 대해 관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념해야할 것 중에 하나는 트럼프가 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오바마의 정책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오바마케어'라는 복지정책도 심하게 비판했지만, 북핵 정책 즉 '전략적 인내'에 대해 결국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낸 비생산적인 정책이었다고 비판해왔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는 기조를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해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더욱 강경한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본다. 아마 대북 압박이 강해지고 북미관계는 더욱 엄중해질 것이다."
중국, 미국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박근혜 정부 친중정책은 '실패'
-북핵 문제 접근에 있어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압박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북한에 압력을 넣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난망이라고 본다. 지금 중국의 대외정책 최대 목표는 대국굴기 아니겠나. 대국굴기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미국의 포위망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금 미중 간 패권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동북아에서의 신냉전 구도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여전히 중국이 미국의 힘에 미치지 못하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이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남중국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중 간 무력갈등이나 센가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갈등이 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중국에게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이고, 이 점을 이용해 미국이 중국에 통상 압력을 가하고 관세 폭탄을 매길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안보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7개의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혀 굴복하지 않고 핵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중국은 항상 북한에 대해 이중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이른바 '주노야소'라고 한다. 낮에는 북핵에 대해 화를 내고 밤에는 아무도 모르게 웃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 및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는데.
"물론이다. 중국이 북핵에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지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는 훨씬 좋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한중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지렛대로 중국을 활용하려던 것 아닌가.
"맞다.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올라 인민해방군 사열을 지켜보고, 중국이 창설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이 가입하는 등 워싱턴과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면서까지 친중적인 행보를 취했다. 그러나 그때 전문가들은 중국을 이용해서 북핵을 해결하려는 정책은 안 될 것이라고 누차 이야기했다. 중국과 미국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신냉전 구도라는 큰 그림 속에서 북한이라는 존재는 중국에게 유일한 군사동맹국이다. 다시 말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중국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어찌됐건 동맹국이고, 북한의 핵은 중국에게 전략적 자산인 셈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신냉전 구도에서 친중적인 정책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정책은 어떤 정부가 하더라도 될 수 없는 정책이다."
사드·소녀상 문제, 국가이익 반영해야…방어는 '다다익선'
-최근 한국은 중국과 사드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이 비공식적인 제재 조치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사드는 미중 간의 문제다. 그럼에도 미국과 중국이 해결하도록 만들자는 방안은 희망사항은 될 수 있지만 실현될 수는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미국의 방어무기가 들어오는 것이지 않나. 중국 입장에서는 가장 싫은 것이 미국이 가까이 오는 것이고, 미국의 포위망을 와해시키려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그런 미국이 지금 포위망을 좁혀오니 심하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드는 어쨌든 한미 간 합의가 돼야 들여올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이 사드배치의 한 축인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미국을 압박하는 게 쉬운가, 한국을 압박하는 게 쉬운가. 당연히 한국을 압박하는 게 쉽다고 느끼고, 한국에 계속해서 공을 던지는 거다. 중국은 사드 문제에 대해 한국이 어떻게 결정하는지 보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중국 편에 설 나라인지 동맹을 중시하는 나라인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야말로 도마 위에 올라와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해야할까. 원칙적으로는 국가이익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 사드 결정을 철회한다면 당장의 경제보복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를 해보자. 한중관계가 틀어져서 입는 피해는 주로 경제적인 피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드를 철회하고 중국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려 한미동맹이 약화된다면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와 통일의 기반이 송두리째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 동맹이 무너지면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무역이 위축되는 등 경제가 통째로 흔들릴 것이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과연 중국이 포기할까. 중국의 반대를 묵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독일 통일 때 미국이 적극적으로 뛰지 않았다면 아마 통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맹이 없으면 통일 가능성도 없다. 결론적으로 한미동맹에 걸려있는 국가이익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모든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해관계가 갈렸을 때는 돌아오는 이익이 더 큰 쪽을 선택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걸린 국가이익이 더 크다고 볼지라도 중국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중국을 설득하는 작업은 끝까지 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이 가까이 오는 것이 싫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종주국 의식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중국 지도자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달 중국학자들과 사드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집밖에 무기를 든 폭력배들이 들락거려서 집주인이 겁이나 자물쇠를 하나 더 샀다. 그런데 그 자물쇠가 폭력배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어 집주인이 더 위험해질 수 있는가'하고 물었다. 중국학자들이 웃기만 하고 답을 못하더라. 중국은 자신들의 주장이 궤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소위 한국이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설득노력은 해야 한다. 안보 주권을 지키는 선에서 설득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드배치 이외의 결정은 없다고 보면 된다. 북한이 핵실험을 5번이나 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사드를 가져다 놓더라도 새발의 피다. 북한의 핵을 다 막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완전하지도 않은 것을 왜 들여오느냐'고 한다. 그러나 방어는 다다익선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완전하지 않은 것을 왜 가져오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도 위기다.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해 일본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역사적 과오만 놓고 이야기한다면 일본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독일처럼 사과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 당위론적으로 보면 미흡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현실론으로 들어오면 이것 역시 한국의 국익을 생각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동북아 차원에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나쁜데 미국과의 관계도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그런데 일본과의 관계마저 소원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지금 외교적 고아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마저 더 악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한일 간 공통이익이 되는 경제와 북핵 분야다. 일본이 좋든 싫든 한일 간 경제교류는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일본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이 공감대 위에서 북핵에 대처할 협력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역사적 과오만을 놓고 질타하는 것만이 옳은가 아니면 상호 자제하고 국가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게 옳은가. 이것은 국민들이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론조사를 보면 한일 합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을 넘는다. 그렇다면 여론은 다 옳은가. 정치인들은 여론에 따라 정치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론을 바꾸기 위해 앞장서야 할 때도 있다. 한일 문제가 바로 그렇다.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한일 간 자제하고 상호 이익을 찾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친일로 몰고 매도한다.
다툴 것과 협력할 것을 구분해야 하고, 다툴 것은 다투더라도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독도 문제를 가지고 시비하면 반박하면서도 일본과 합동훈련을 같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친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지금은 권한대행이 컨트롤타워 역할해야…한국판 '잔다르크' 절실
-이런 상황에서 외교 리더십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외교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 야당 심지어 여당까지 권한대행이 뭔가를 하기만 하면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지 말라'며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감히 권한대행이 대통령 행세를 한다고 생각할지라도 대통령 행세를 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한다. 지금 아베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부단히 교신하고 접촉하는데, 우리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이더라도 권한대행이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다들 몸을 낮추고 있는 상황이다.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조기 대선이 예상되고 있다. 일부 대권주자들은 사드배치 결정 제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등을 언급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적어도 대선주자로 뛰는 사람들은 안보·외교 문제에 한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이 그야말로 개털되는 것 아닌가 싶다.(웃음) 중국과 일본이 보기에 참 만만한 나라가 되는 것 아니겠나. 대선주자들은 여론의 추이만 보고 어떻게 하면 표가 많이 올 수 있을 것인지만 생각한다. 여객선이 가다가 빙산을 마주했는데 선장이 결심이 서지 않아 선원들을 불러 상의를 했다. 그런데 그때 객실 승객들까지 다 끌어 모아 어떻게 할까 묻는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이 광장민주주의 아닌가. 국가 관계에 있어서도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냉철하게 판단해서 정답에 접근해야지, 여론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한국 외교의 대위기다. 이를 극복할 근본적인 방안이 있을까.
"한국판 잔다르크가 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길은 지금으로선 보이지 않는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