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 탄핵열차...대한민국 파국은 막아야한다
<칼럼>탄핵 가결시 정치·경제 불확실, 대외경쟁력 추락
‘대통령 불신임 및 사퇴 결의안’ 통과…탄핵 버금가는 효과
탄핵 가결시 정치일정·경제상황 불확실, 대외경쟁력 추락
‘대통령 불신임 및 사퇴 결의안’ 통과…탄핵 버금가는 효과
지난 11월 29일 발표된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문에도 불구하고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탄핵 정국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오는 9일로 예정된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기로 사실상 결정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4월 퇴진, 6월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지난 주말 나타난 촛불 민심과 야3당이 이를 거부하고 상황임을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비박계 의원들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3차 담화문 발표 이후 각 언론과 인터넷의 반응을 정리해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일관적으로 탄핵안을 밀고 가거나, 아니면 대통령이 요구한 대로 정치권이 '조기 퇴진' 일정을 합의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친박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이참에 권력구조를 변경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어서 제3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국은 정치권 각 정파가 이해에 따라 복잡한 함수관계로 얽혀있어서 그 어느 선택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선택을 찾는 작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첫 번째 방안은 탄핵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담화가 나오자마자 인터넷에는 탄핵을 피해보겠다는 꼼수일 뿐이라며 흔들리지 말고 탄핵을 밀고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야당들도 임기단축 협상에 임하지 않고 변함없이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국민들을 생각하면 탄핵 아니라 그 무엇을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탄핵은 여러 가지 정치적 부담과 불확실성을 동반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보다 159년 앞서 인류 최초로 대통령 제도를 도입한 미국이 그동안 단 한 명의 대통령도 탄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먼저 만약 대통령이 비박계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하여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촛불 민심은 어디로 어떻게 번질지 모른다. 아직까지는 대통령의 실정에 실망한 국민들이 대통령의 하야 또는 탄핵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한마음으로 평화적인 촛불을 들었지만, 부결 이후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래도 민의의 대변기관인 국회에서 탄핵안이 재발의 되어 통과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꾸준히 주말마다 광화문으로 나와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조급한 사람들은 직접 정치적 주권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개인들이 정치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이 경우 탄핵정국은 결국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될 수 있고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일어날 것이다. 사실 광화문 광장의 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비상국민행동’은 활동분야와 이념이 서로 다른 1500여 개의 시민단체들의 연대로서 이 같은 민중의 분화상황을 질서 있게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국정을 이 지경으로 만든 공범인 새누리당은 말할 것 없고, 지금까지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우왕좌왕 하며 촛불 민심에 업혀 온 야당들이 정치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는 난망이다.
그렇다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경우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주지하다시피 우리 헌법에 의해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가 진행하게 된다. 민심의 향방이 압력으로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탄핵사유의 범주와 법률 위반의 중대성’을 두고 치열한 법리적 공방이 예상되기에 국회의 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認容)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거기에다 성난 민심이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를 용납할 것 같지도 않다. 더 큰 문제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을 비롯한 정치 일정이 오리무중에 빠지면, 이는 가뜩이나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직면한 우리 경제의 대외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보다시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가시화되고 있고, 브렉시트 또한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이자율 인상 움직임에 대응할 기민한 전략 수립도 필요한 때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 요구한 대로 사임과 대선 등 정치일정을 국회가 정해주는 것이다. 지금 현재 상황으로서는 여야 합의도 어렵고 새누리당 자체도 일치된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담화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원칙’을 내세워 대통령이 당선된 사람이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한 것을 방치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직접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를 거부함으로써 국민들의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앞선 두 담화문에는 많은 거짓이 담겨있다. 그러니 3차 담화를 통해 사임하겠다고 했는데도 지지율이 회복은커녕 촛불이 더욱 거세고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원한다면 우선 자신의 책임을 보다 무겁게 느끼고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며 다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의 하나 대통령이 직접 범죄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랫사람의 죄는 윗사람이 지는 것이 동서고금의 법이며, 그것만으로도 탄핵을 당할 만큼 중대한 죄라는 것을 통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닉슨은 1974년 8월 8일 탄핵소추안이 미국 하원에서 의결되기 직전에 사임함으로써 탄핵을 피해나갔다. 연방 대법원 명령에 의해 공개된 백악관 녹음테이프에서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에 직접 가담한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음테이프라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닉슨은 탄핵될 가능성이 컸다. 원래 그에게 주어진 혐의는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보호하며 지킬 것”이라는 헌법상의 선서 의무와 “법이 성실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어겼다는 것이었다. 즉, 닉슨은 측근과 보조자의 불법행위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지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적절한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탄핵당할 뻔 했던 것이다.
세 번째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자는 방안인데 이야말로 정치적 꼼수이며 국민의 이름으로 배격되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일말의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물론, 개헌은 우리 사회 수준을 한 차원 도약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고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진지한 토론과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다. “법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담화문 문구를 개헌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야당의 분열을 꾀하려는 얕은 수일뿐 일고의 가치도 없다.
‘법절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고 큰 의미 없이 쓴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굳이 ‘법절차’라는 형식을 부여하자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1834년 미국 상원은 거부권을 빈번하게 남용하는 앤드루 잭슨을 탄핵하고자 했으나 정치적 부담이 크자 대신 ‘불신임(censure)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던 미국 하원은 여론이 대통령 동정론으로 돌아서자 탄핵이 아닌 ‘불신임’으로 가닥을 잡고 그 내용에 강한 어조로 클린턴의 위증행위를 비난하는 문구를 넣으려고 했다. 만약 클린턴이 계속 겸손한 태도로 탄핵 정국을 받아들였다면 탄핵절차가 중지되고 불심임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불신임 조항은 미국 헌법에 명문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헌법정신을 살려서 그러한 방법을 쓴 것이다.
우리도 우리 헌법의 정신을 살려 국회에서 ‘대통령 불신임 및 사퇴 결의안’을 통과시키면 된다. 대통령이 헌법상 주어진 책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했고, 중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을 국회 결의안에 명시한다면, 이는 영구적인 기록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잘못을 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법적 제재의 정도는 탄핵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음 대통령들에게 주는 경고와 역사적 교훈의 측면에서는 거의 버금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 헌법이 존재하는 근본 목적은 국민의 행복과 안녕의 추구이다. 탄핵의 목적을 부분적으로 달성하면서 탄핵절차가 가져오는 국가적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이라면 이는 헌법의 범위 내에 있다. 지금은 파국을 막기 위해 온갖 지혜를 쥐어짜야 하는 엄중한 시간임을 정치권이 깨닫길 바란다.
글/허구생 단국대 교수·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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