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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에서 국회로 던져진 '대통령의 거취'


입력 2016.11.29 18:38 수정 2016.11.29 18:50        이충재 기자

국회, 대통령 임기단축 전제 '개헌'이 난제

여당내 탄핵파 발길 돌릴 수 있을지 주목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가운데 국회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3차 담화를 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고립무원'에 놓인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퇴진카드였다. 박 대통령은 29일 제3차 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론 퇴진을 앞세웠지만, 사실상 퇴진논의의 공을 국회로 던진 '다목적 정국전환 카드'라는 분석이다.

당장 커지는 광장의 촛불을 잡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변엔 야권의 탄핵 공조를 흩뜨리고 시간을 벌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언급한 '조기퇴진'의 경우, 절차 마련 자체가 단기간 내에 실현되기 어렵다. 여야 합의가 변수인데다 대통령의 조기 퇴진 절차를 규정한 법적 근거 역시 마련돼 있지 않다.

더욱이 "임기 단축"을 전제로 개헌까지 끌어들인 만큼, 혼란스러워진 건 공을 넘겨받은 정치권이다. 개헌을 하지 않고선 대통령의 임기단축도 불가능하다. 개헌 논의는 탄핵 추진과는 또 다른 선상에 있다.

실제 이날 여야 정치권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혼란에 빠졌다. "안정적인 정권 이양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요구에 방향타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야당은 일단 "예정대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입을 맞췄지만 "촛불로 하야를 압박해야 한다",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여당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탄핵을 막으려는 친박(친박근혜) 진영이나 탄핵을 추진 중인 '비박' 사이에 변화기류가 형성됐다. 탄핵파 의원들이 박 대통령이 던진 '또 다른 선택지'로 발길을 돌릴지 여부가 관건이다.

절제된 '감성에 호소'…'패러디 어록'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특유의 감성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또 한번 내놨다.

지난 2차 담화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라는 발언으로 역풍을 맞은 자기중심의 '심경호소' 대신 국민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절제된 표현을 썼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내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린다"고 했고, 퇴진 의사를 밝힐 때는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회했다. 담화 직후 "패러디를 양산할만한 어록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면서 자신의 무고함을 강조했다.

또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향후 특별검사 수사의 법리적인 접근을 방어하고 명분을 세워두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국 해법 논의를 위해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회동을 마치고 국회를 나오고 있다.ⓒ데일리안

'제3담화 현장' 기자들 "질문 있습니다" 손들었지만...

이날 담화 발표에 앞서 회견장에 입장한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은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바로 옆자리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는 가벼운 목례만 했다. 평소 회견장에서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참모들도 이날은 입을 굳게 다물고, 두 손을 모은 채 담화를 지켜봤다.

특히 박 대통령의 담화 직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기자석에서 "최순실씨와 공범관계를 인정하는가", "질문을 받아달라"는 목소리가 터졌지만, 박 대통령의 답변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대신 박 대통령은 "(오늘은) 여러가지 무거운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여러 가지 경위에 대해 소상히 말할 것"이라며 "여러분께서 질문하고 싶은 것도 그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회견장을 나섰다.

일부 시민단체에선 1,2차 담화에서 질문을 하지 않은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비판하며 "대통령에게 질문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기자단 내에서도 '질문을 받지 않으면 대통령 회견이나 담화 등을 보이콧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이날 입은 회색 재킷에 짙은 회색 바지 정장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무거운 메시지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외교 안보 사안과 관련한 행사에서 회색계열의 어두운 의상을 입었다. 회색 정장 바지는 결연한 의지를 밝힐 때나 중요한 행사에 자주 입어 일명 '전투복'으로 불린다.

한편 박 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2차 담화 이후 25일 만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최순실 의혹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고, 지난 4일 담화에선 검찰과 특별검사 수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담화에 앞서 정치권 일각에선 '하야 발표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는 "그런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날 담화는 언론에 1시간 30분 전에 공식 통보가 됐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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