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조선·해운 구조조정 '불협화음'…정부 탓? 기업 탓?
정부-기업, 책임 회피 ‘네 탓 공방’…산업계 구조조정 차질
“산업부 주도 구조조정, 실적내기용” 비판 목소리
철강·조선·해운업 등 국내 주력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들 간의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네 탓 공방’을 펼치고 있어 구조조정 과정이 순탄치 않은 모습이다.
2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공개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중간보고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 철강사 후판공장 7개 중 3개를 폐쇄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란의 중심이다.
보고서는 후판 수요가 지난해 920만톤에서 2020년 700만톤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2020년까지 국내 조선사 수주량이 지난해 대비 절반 아래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현재 생산 능력 중 400만∼500만톤가량을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연내 후판 공장 1개를 줄이고 2개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등 총 3개의 공장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400~500만톤의 설비 감축이 철강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이라며 “조선업 불황이 끝나고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을 때 과잉으로 판단했던 후판 수요를 수입산이 고스란히 채우게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월 초에는 이 보고서가 작성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가해졌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8월 2일 본지 단독 보도)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가 철강업체 임원들과 접촉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안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는 설명이다.
조선업계는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에서 상당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분식회계 의혹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사내에 만연된 부정부패가 드러나면서 경영정상화 작업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대우조선해양의 소난골 드릴십 2기에 대한 인도가 다음 달 이후로 미뤄졌다. 이에 따라 인도대금 1조원에 대한 회수 여부도 또 다시 미궁에 빠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에 따른 ‘물류대란’ 사태도 해결될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와 채권단, 한진그룹 등 주체들은 ‘네 탓 공방’에 열을 올리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다.
지난 8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두고 “관계부처가 대책을 논의했지만 한진 측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진해운 측은 “해양수산부와 채권단의 정보 요청에는 대부분 협조했다”며 “물류대란을 막기 위한 운송정보 등에 대한 자료 요청은 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대한항공이 물류대란 해결을 위해 한진해운에 약속한 600억원을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고 있다. 대한항공 이사회가 지난 10일 의결한 롱비치터미널 담보 선 취득 조건부 지원안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입장이 난처해진 대한항공은 18일 긴급 이사회를 개최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장시간 논의를 거쳤으나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주력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 산업부의 실책이 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부 주도의 구조조정 방식이 산업계의 회생 보다는 은행권의 자본건전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 주도의 구조 개편은 산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기에 자금을 대출해준 국책은행, 시중은행들의 자본건전성 확보가 우선인 것처럼 보인다”며 “이는 업계 회생 보다는 실적내기용 구조조정에만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주형환 장관은 산업부 장관 내정 이후에도 각 은행장들과 비공식적인 만남을 즐겨 가지는 등 여전히 주력 산업계 CEO보다 은행권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안다”며 “은행권을 배제하고 진정으로 산업계를 살리기 위한 정책을 펼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내정된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이다. 기재부에서 은행제도과장 등을 역임하며 서울은행 매각 등 굵직한 구조조정을 처리한 바 있다.
산업부는 1997년 이후 5명의 기재부 출신 장관을 맞이했다. 임창열, 정덕구, 윤진식, 최경환, 최중경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1년 남짓 재임하며 불명예 퇴진하는 등 산업계의 평가가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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