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김종인이 휴가 때 가져간 책 읽어보니...


입력 2016.08.07 09:35 수정 2016.08.07 14:37        이슬기 기자, 전형민 기자, 조정한 기자

도서 목록 공개...경제민주화, 당 체질개선 필요성과 콘텐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달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정부의 경제인식 상황과 추경편성 등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뒤 얼굴을 만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제1야당 대표의 ‘도서 목록’은 의도된 정치적 수사다. 한 권의 무게는 공개 발언 열 마디보다 무겁다. 도서의 의미는 확장되고,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도 확대된다.

지난 1일 강원도로 휴가를 떠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휴가지에서 읽을 책 목록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휴가 기간 동안 작가 조정래 씨의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을 비롯해 '창조의 탄생'(케빈 에슈턴), '변화의 미래'(마티아스 호르크스), 독일어 원서인 '희망적 관측'(프레데릭 뷰크너)을 읽었다고 한다. 프레데릭 뷰크너는 독일 중도좌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내년 대선 정국에서 킹 메이커 역할을 구상 중인 김 대표는 휴가 전 “내가 한번 플랫폼을 만들고 대선행 티켓을 끊어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휴가가 끝나면 (정국 구상을) 한번 정리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전대 후엔 독일을 방문해 유럽의 경제와 헌법, 통일 이슈 등을 체화한 뒤 대선 경선에 맞춰 본격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 대표가 공개한 도서 목록으로 킹 메이커의 향후 움직임을 내다보는 이유다.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허수아비춤' 전매특허 경제민주화 전진 배치

‘돈’이다. 괜한 수식어나 한자어로 아닌 척 가리지 않고, 작가는 날 것 그대로를 폭로한다. 돈의 힘 앞에선 법도 정치도 언론도 쉬이 무너지는 오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투표하는 순간을 제외하곤 한 번도 주인이 되어본 적 없는, 국가와 재벌의 노예로 규정되는 국민은 ‘기업이 잘돼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종교적 신념에 맞춰 대기업의 비리에 한없이 관대하다. 제 것도 아닌 황금빛 들녘을 호위하겠노라 속절없이 흔들리는 ‘가짜 인간’의 춤과 다를 바 없다.

소설은 일류 대기업 회장이 거대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비밀 부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비리와 배신, 은폐와 굴종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거액의 로비자금을 통해 법조계와 정치권, 언론계, 심지어 노동조합 간부까지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대기업의 치밀함과 대범함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작가가 서문 말머리에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고 고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화상 마주하기를 회피할수록 비극은 길어진다.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선 80년대 독재를 용납하지 않고 정치민주화를 이룩했듯, 경제에도 재벌의 불법행위를 용납지 않는 민주화를 이룩하는 길 뿐이라는 게 작가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소설 서문과 본문에 직접적으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수차례 등장한다. 경제민주화의 원조 격인 김 대표가 대선판에서 이 브랜드를 전면에 내걸고, 대선 주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변화의 미래'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한국경제신문사
'변화의 미래' 수권 정당 만들 콘텐츠 제시

수권을 위해선 정당을 변화시킬 콘텐츠가 필수적이다. ‘변화의 미래’가 제시하는 정당은 ‘창조적 정당’이다. 즉 김 대표는 대선을 준비하는 정당이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호르크스는 유럽을 대표하는 미래학자로서 199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미래연구소'를 설립했다. 미래의 정당은 싱크탱크의 성격을 띤 정당이 될 거라는 개념도 내놨다.

작가는 사회적·경제적·개인적·문화적·정신적 변화에 대한 담론을 바탕으로 변화를 위한 '10가지 주요 키워드'를 제시한다. 대표적 예시로 언급된 마야족은 16세기 무렵까지 예술과 과학, 복잡한 정치 체계를 가지고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했지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족했다. 아울러 정치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두려움, 굴욕, 희망’이라는 세 가지 감정이 필요하다는 정치학자 도미니크 모이시의 이론도 소개됐다.

작가는 특히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 등 특정 역사에 대한 만성적 스트레스와 지속적인 굴욕감에 집착하지 말고, 변화를 위한 추진력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보수 정권 8년 간 야당은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체적인 정책을 제안해 왔지만, 정부여당의 '발목 잡기'라는 공세에 부딪쳐 무산됐다. 그러나 야당이 감내해 온 ‘스트레스’를 오히려 창조적으로 활용, 정권 교체의 원동력을 삼는 가능성을 제시하겠다는 게 이 책을 소개한 김 대표의 목적으로 보인다.

'창조의 탄생' 케빈 애슈턴 지음 역자 이은경 옮김 출판사 북라이프 펴냄.
'창조의 탄생' '당 체질개선이 필수' 의지 표명

'창조의 탄생'은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창조'라 불리는 발명, 발견의 숨겨진 이야기를 근거로 창조가 선택받은 천재들의 전유물이 아닌 평생에 걸친 노동이며 인내라는 점을 설명한 책이다. 작가는 전파식별(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을 발명해 현대 물류의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케빈 애슈턴이다.

책은 바닐라 인공수분법의 발견부터 △천재 작곡가였던 모짜르트의 창작의 고통 △기존의 가설을 재정립한 후에야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비행 △기존의 기업성공 공식을 타파하고 스마트폰을 창조한 스티브 잡스 등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발명 및 발견을 한 인물들을 관찰한다. 이어 그들은 특별한 천재가 아니라 '반복', '실패', '좌절'을 거쳤다는 공통점을 도출한다.

앞서 김 대표는 사드 배치에 대해 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더민주의 기존 성향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거침 없이 추진했다. 따라서 휴가지 도서로 '창조의 탄생'을 택함으로써 당 체질개선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이를 위한 조직문화 구성 등에 대한 통찰과 힌트를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칫 '오만'과 '독선', '아집'으로 빠질 수도 있다. 창조에 도전하기 위해선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비난'과 '반대' 등의 역경을 극복해야 한다. 문제는 제3장(역경을 예상하라)이나 제5장(모두가 인정받지 못한다)과 같이 비난과 반대를 단순한 '기존의 저항'으로 규정정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심리적 맷집'이 단단해지는 경우다.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이슬기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