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구조조정 컨설팅, 정부가 보고서 개입했다?
<단독>민간 보고서에 정부 입김 작용…업계 반발 커질 전망
‘보여주기식’ 구조조정 위한 무리수 지적
철강산업의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할 보스턴컨설팅그룹(이하 BCG)의 보고서가 정부의 입맛대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보고서가 작성 중인 시기에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가 각 철강업체 임원들과 접촉해 보고서에 담길 예정이던 구조조정안을 미리 설명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산업부 관계자는 철강업체 임원들에게 “설비가 매각될 경우 매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구체적인 질문까지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점은 중간보고서가 공개된 7월 21일 이전이라는 점에서 BCG의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가해졌다는 근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철강업체 임원들과의 접촉도 ‘의견수렴’이 아닌 정부 주도의 ‘주먹구구식’ 구조조정안을 단순히 확인하기 위한 절차에 불과했다는 게 철강업계의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 관계자가 언급했던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구조조정안이 중간보고서 발표에 그대로 등장했다”며 “민간 컨설팅업체가 객관적으로 판단해 제시해야할 보고서에 산업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민간 주도로 구조조정을 이끌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보고서에서 구조조정 물망에 오른 품목 가운데 철근이 업계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21일 일부업체에 공개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철근은 지역별 그룹핑 및 기업별 통폐합을 통해 대형화·거점화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A제강사가 경인권, B제강사가 충청권, C제강사가 부산·경남권 지역을 통합 운영하자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철근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존 대형업체가 철근 부문에서 가지지 못했던 경쟁력이 다른 업체가 운영하면 생기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보고서대로 대형화·거점화를 시행해 설비를 감축하면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없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철강업계 의견수렴을 위해 한국철강협회, 해당업체와 함께 7월 중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간담회가 행정적인 요식행위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업계 한 관계자는 “BCG에서 업계의 전반적인 의견을 수렴해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산업부가 언급한 바 있는 비현실적인 방안이 보고서를 통해 제안되면서 반발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과정에서 비관세장벽 강화 등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 방안은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일각에서는 산업부의 이러한 간섭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미명하에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산업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 산업구조조정 분과위를 통해 정부 차원의 조선·철강·석유화학 관련 종합지원대책을 9월 말 발표할 계획이다. 그런데 조선·석유화학에 뒤쳐지지 않는 구조조정 노력을 철강에서도 보여주려다 보니 담당 부서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 구조조정은 크게는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한 중대사다. 업계의 공감대를 얻는 과정을 거쳐야한다”며 “특정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구조조정은 언젠가 산업 침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관련,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 컨설팅 보고서가 나오기 이전 업계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 경우 개별 접촉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보고서 내용과 관련된 대화는 하지 않았고 전반적인 업계 현황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이라고 해명했다.
보고서 작성을 담당했던 BCG 관계자는 “관련된 답변을 드리기 곤란하다”며 “제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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