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저하 ·주가하락'...SKT-헬로비전 M&A 176일 '표류'
관련 직원들 심사 장기화에 "업무 가중, 좌불안석" 토로
공정위 "심사기간 최장 아냐” 발끈...지나친 신중함의 폐혜 속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승인 신청에 대해 정부의 지나친 신중함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24일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양사 인수 여부 심사에 착수한지 176일째 표류하면서 관련 업계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당초 SK텔레콤에서 늦어도 4월 중순까지 심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약 없이 늦어지며 양사 직원들의 시름도 깊어가고 있다. SK텔레콤의 주가는 지난해 12월 이후 10%이상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합병 후 진행 예정이었던 각종 사업들이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사기 저하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고장난 녹음기처럼 "심사기한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이상한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인수합병에 울고 웃는 기업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양사 인수합병에 대한 공정위 심사가 늦어지며 관련 업계가 어수선하다.
공정위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간 합병심사에 들어간지 약 반년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면서 양사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SK텔레콤은 심사 지연으로 새로 출범할 합병 회사와 각종 투자 시기의 골든 타임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CJ헬로비전과 합병하는 SK브로드밴드 또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합병 기일을 늦어도 7월 1일로 보고 준비 작업을 진행했으나, 심사 결과가 표류하자 더 이상 속도를 내지도 못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SK브로드밴드의 한 직원은 “기존 업무에 합병 관련 업무까지 같이 진행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가운데, 뚜렷한 방침이 하달되지 않는 상황이 장기간 계속되고 있다”며 “모든 업무가 붕 뜬 기분이다. 하루하루 좌불안석”이라며 애타는 심정을 밝혔다.
CJ헬로비전 또한 경영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올해 1분기 CJ헬로비전의 매출은 2928억원, 영업이익 26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4.85%, 6.64% 감소했다. 가입자 역시 방송, 인터넷, 집전화 부문 모두 소폭 감소했다. 유료방송시장 경쟁 심화에 따라 사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인수합병으로 이를 타개하겠다는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반면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는 심사 지연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양사는 향후 합병시 1위 사업자 SK텔레콤의 이동통신서비스 영향력이 아날로그 케이블TV 가입자의 디지털 케이블TV로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어 자칫 독과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이동통신1위와 케이블1위의 기업 결합 시도인만큼, 그 어느때보다 신중한 심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심사 지연 절대 아냐” 공정위
공정위는 지난 23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심사지연에 대해 "역대 1년 이상 소요된 경우가 다수 있었다"며 "고의로 최장 심사기간을 넘긴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과거 현대 HCN 지역 케이블 방송사 인수, CJ케이블넷의 지역 케이블 방송사 인수 등 경쟁제한성이 있어 시정조치를 한 경우에 1년 이상 소요된 경우가 다수 있었다”며 “기업결합 심사는 신고회사의 자료제출 소요기간, 수평-수직결합 등 기업결합 유형, 관련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이 다르기 때문에 심사기간 장단을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이같은 공정위의 반박을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업계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한 해명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2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에 인수합병 심사를 신청했다.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일수는 접수일로부터 최장 120일로 규정됐다. 하지만 현재 심사기일은 어느덧 6개월을 앞두며 기한을 훌쩍 넘겼다. 공정위의 심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미래부도 소관 심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공정위는 자료 보정과 추가 자료 요청에 걸리는 시간은 심사기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6개월 이상 계속되는 늦장 심사로 인해 해당기업은 주식하락과 직원들의 사기저하로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고, 관련업계는 업계대로 어수선하다.
특히 일각에서는 양사 인수합병이 20대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치적 이슈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져가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번 인수건이 합병 단계에서 통합방송법 조항(제 8조 6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통합방송법 국회 통과 여부에 따라 인수합병 작업이 암초에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로 일각에선 공정위가 이번 이슈건이 관련 업계는 물론 정치적 사안까지 맞물려 있는 만큼, 최대한 몸 사리기에 나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건이 전방위적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는 민감한 사안이므로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투자에 따른 신사업을 진행하는데 타이밍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종 산업간 융합사례이기 때문에 과거 잣대만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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