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우리들, 일본군 위안부 영화에 열광하나
<김헌식의 문화 꼬기>'귀향' 위안부 소재라 돌풍 일으켰을까
영화계에는 소재주의 영화가 있다. 생소해보이지만, 의미가 따로 심오하게 있지는 않다. 소재 자체가 중요하고, 전부인 영화를 말한다. 때문에 이런 영화들은 소재 자체로 주목받는 영화다.
어떤 소재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호평을 받기도 한다. 잘 다뤄지지 않는 소재일수록 더욱 그렇다. 꺼리거나 금기시되는 소재일 수록 이런 주목과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주목과 호평은 소재 자체에서 오는 것이라서 작품성과 별개인 경우가 많다. 완성도는 물론이고 영화 미학의 기본은 사실주의와 사회적 운동 차원에서 간단하게 외면된다.
특히, 대중적인 가치와는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이성적으로 소비하는 영화들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꼭 봐주어야 하는 영화가 된다. 재미가 없어도 참고 의무감으로 봐야할 영화가 되는 것이다. 봐주기는 하지만 재미가 없기 때문에 강력한 입소문은 나지 않는다. 겉으로는 호평인데 안으로는 그렇지 않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소재는 호평이지만, 실제 영화 투자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대중성은 상업성이기 때문이다. 전작들의 결과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 화제가 된 영화 '귀향'도 이런 손재주의 영화로만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반전이 있었다.
일단 영화 '귀향'은 영화 소재가 위안부이기 때문에 호평을 받았다. 잘 다루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낮은 목소리' 같은 다큐 영화가 있었고, '마지막 위안부' 같은 극 영화도 있었지만, 대중성은 담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귀향'은 초기 투자를 받지는 못했다. 그것이 관객들에게 영화가 보여지는 데 소요 시간이 14년이 걸리고, 12억원의 제작비를 채우는 데 7만 5000여명의 후원자들이 필요했던 이유였다. 상업 영화라면 문제도 안되는 시간과 예산이었다. 감독이 갖고 있는 독특한 스토리가 크라우드펀딩을 견인한 점은 있었다.
또한 만약 디지털을 매개로 한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제작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화제작이 된 이유는 단지 이런 소재주의 영화이며, 독특한 내력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미학의 요소와 예술적 가치가 충분히 투영 되어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은유적이면서 극적인 스토리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사회적 운동 차원에서 예컨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만 호소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두 주인공 소녀를 대비시키면서 해원의 과정 등은 메시지와 주제의식뿐만 아니라 영화적 감동을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 비로소 영화 '귀향'을 통해 위안부 소재가 영화다운 영화의 틀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이러한 점은 영화 '동주'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6억원이라는 저예산 영화도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청춘들이 주인공이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극찬이나 영웅과 하지 않고 그의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엄혹한 시대적 상황에 처한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른 청춘들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소녀들이 위안부에 끌려가야했다면, 소년들은 학도병이나 징용에 끌려가야 했던 현실을 다루고 있다. 모두 식민지 시기의 항일운동이나 이데올로기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청춘들의 모습 그 자체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된 배경은 이런 청춘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점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암울한 현실,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 갈등하는 청춘들은 그 가운데에서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려 발버둥친다. 청춘의 순수와 고통 방황은 시대를 넘어 공감대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두 영화는 모두 순익분기점이 모두 무난하게 돌파되었다. 이 영화들의 상영에 유리했던, 즉 볼만한 영화가 없던 점은 거꾸로 될만한 영화만을 위해 대규모 제작비 위주의 블록버스터 영화에 의존한 결과였다. 이런 영화들의 흥행은 다양성 영화나 독립 영화가 왜 필요한지 잘 보여주었다. 또한 소재주의 영화가 단지 사회적 운동차원의 무브먼트 시네마에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