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절'을 '동네 싸움터'로 만든 사람들
<기자수첩>'손님' 두 패거리가 점령한 조계사...신도들은 어디에서 불공을?
"저 나쁜 도둑놈 처 집어넣어야지!", "뭐? 이 XXX아 방금 뭐라고 지껄였어?!", "이게 미쳤나 입 다물지 못해!", "늙은 XX야 나가 죽어라 그냥...빨리 죽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욕설들이 난무한 이곳은 지난 1일 조계사. 평소 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를 닦는, 중생들의 온갖 염원이 담긴 ‘신성한’ 절에서 거친 욕설이 오간 것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피신이 길어지면서다. 때문에 신도들의 불만이 커져 한 위원장의 거취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맞붙으며 애꿎은 절만 동네 싸움장이 됐다.
앞서 한상균 위원장은 지난달 광화문에서 벌어진 민중총궐기 집회 및 지난해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서 도로 점거, 청와대 행진 등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조계사로 피신했다. 예로부터 ‘종교시설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안 된다’는 관습이 있어왔기 때문에 경찰조차도 공권력 투입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1일 조계사 신도회 임원진 약 160여명은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소재 조계사 경내 안심당에서 임원총회를 열고 조계사에 은신 중인 한 위원장과 관련한 사태를 논의했다. 그 결과 한 위원장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며 신도님들이 좀 더 인내하고 견디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이세용 조계사 총무실장은 전했다. 사실상 신도회 차원에서는 한 위원장을 오는 6일까지 조계사에 머물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 공식입장을 듣기 위해 이날 조계사에 모인 수많은 인파는 ‘주인’인 불교 신자들이 아닌 한 위원장을 따랐던 시위 참가 세력과 이를 규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고요한 경내 불탑과 축조물들을 아랑곳 않고 각자 주장만을 목청껏 외치며 한데 엉겨 붙었다. 주인은 내쫓고 손님 두 패가 나뉘어 싸움을 벌인 형국이었다.
특히 80대의 한 노인은 한 위원장의 퇴거를 주장하며 “나라 망신이다. 나쁜 짓 한 도둑놈 가둬놓고 안 내놓고 뭐하고 있나. 우리 경찰차 다 때려 부수고 그게 다 우리 세금인데, 우리나라가 싫으면 다른 나라 가서 살면 될 거 아닌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이 노인을 향해 “정신 나간 할머니”, “조용해라”, “나가라” 라며 목소리를 높이자 노인을 옹호하는 이들이 속속 모여들어 싸움의 규모가 커졌다.
한참 고성이 오가다 상황이 정리될 때쯤 조계사 경내 대웅전 앞에서 ‘2차전’을 알리는 욕설이 또다시 들려왔다. 승복을 연상케 하는 회색 계량한복을 입은 한 50대 여성과 세월호 리본을 모자와 가방 등에 달고 나타난 60대 남성이 우산과 가방을 휘두르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주인은 어디가고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가 됐다. 이 순간 조계사는 신자들의 ‘절’이 아닌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주인인 싸움터였다.
조계사가 논란의 장이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철도파업을 주도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과 노조원들, 앞서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지도부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 6명도 조계사를 도피처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과거 1994년에도 철도·지하철노조, 한국통신노조 지도부 등이 조계사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민중'총궐기의 주도자인 한상균 위원장이 '민중'이 주인인 절에 피신하면서 벌어진 조계사의 혼란, 어떻게 봐야할까. 손님들에 의해 내쫓긴 조계사 신도들은 도대체 어디에 가서 불공을 드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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