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수무책' 금융사기 못 잡는다면 대포통장이라도…
갈수록 수법 고도화된 전자금융사기, 대포통장 근절 등 근본적인 대책 필요
대포통장 명의제공자 처벌, 대포통장 의심계좌 시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 발급 법률 개정 필요
#대학을 졸업한 후 1년간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번번히 실패를 거듭했던 취업생 A씨(29)는 며칠 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뜸 모 증권회사인데 통장을 대여해주면 매월 200만원씩 선불로 지급해주겠다는 내용이다.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투자해서 이익을 낼 수 없어 타인의 명의로 투자를 한 후 이익금이 발생하면 10%가량을 통장 대여료로 준다는 요지다. A씨는 요새 보이스피싱 등 전자금융사기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 믿지 못했지만 한 켠으로는 흔들렸다. A씨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대신 믿음을 심도록 신분관련 서류를 모두 팩스로 보낸준다는 말에 이를 믿고 기다렸다. 이후 신분증과 재직증명서, 사업자등록증까지 팩스로 받았다. 대신 퀵서비스로 자신의 체크카드를 보내라고 했다. 보낸 후 3일만에 A씨의 통장에 500만원이 입금됐다. 그런 후 그 돈을 빼내는 대신 50만원을 송금해준다는 말에 알았다며 기다렸다. A씨는 불안했다. 혹시 체크카드도 불법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가 화들짝 놀랐다. 자신과 똑같은 피해사실을 확인했다. A씨는 바로 거래 은행에 전화해 자초지정을 얘기한 후 카드분실 신고와 통장지급 정리를 했다. 그 다음날 A씨는 다시 통장을 확인해봤더니 잔고가 0원이었다. 사기범들이 A씨의 신고 전 돈을 전부 빼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경찰이 A씨에게 소환을 요구했고 이후 조사를 받은 후 처벌을 기다리는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 농협의 예금 무단인출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금자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아무리 전자금융사기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지능화되는 사기행각에 피해만 양산되는 모양새다.
금융사기범들은 마련해놓은 대포통장을 통해 '쪼개기' 방식으로 예금주 계좌 돈을 빼내는 수법을 동원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예금주의 정보를 얻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IT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기범이나 해커들은 개인신용정보를 하루 이틀 사이에 빼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빼내는 까닭에 피해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정보가 새어나가는지 알수 없다고 말한다.
경찰 역시 쪼개기 수법을 동원한 대포통장 명의의 예금주를 소환하고 싶어도 대부분 노숙자들이어서 사건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은행권에서는 부정사용 방지시스템(FDS)을 구축하지 못한 탓도 원인제공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좀더 강력한 대포통장 감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8일 이상규 의원(통합진보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융권의 전자금융사기 피해액은 2011년 502억1600만원에서 2012년 1153억8400만원, 지난해 1364억7700만원으로 증가했다. 올 들어서 10월까지 1719억2500만원으로 급증세를 보였다.
전자금융사기의 빈발로 금감원은 경찰청 등과 협조해 2011년 이후 10여차례의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 시행 및 확대, 대포통장 실태 부석 및 과다발급 금융회사 점검·업무 체결, 신분증 진위확인서비스 도입 유도 등을 위한 TF 운영 등이다.
하지만 파밍, 스미싱, 메모리해킹 등 나날이 수법이 고도화되는 전자금융사기는 단속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대포통장 근절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중심에는 계좌이체 등을 위해 필연적으로 동원되는 대포통장이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피싱사기 피해금 환급이 시작된 2011년 12월부터 2013년말까지 피싱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은 총 4800여개다. 또한 2012년 3월부터 2013년말까지 대출빙자 사기에 이용돼 지급정지된 대포통장은 총 5500여개다.
연간 약 5만개 이상의 대포통장이 피싱과 대출사기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계좌개설 단계별 주요 의심거래유형을 발굴하고 예금계좌 개설업무에 참고하도록 은행마다 공유하고 있다. 신설법인이 뚜렷한 이유가 없이 단기간내 다수의 계좌개설과 현금카드 발급해 최고 이체한도를 요청하거나 신원확인 회피를 위해 본인여부 식별이 곤란하도록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같은 대포통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하더라도 예방의 효과는 미미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금융사기 피해가 발생되면 사후약방문 같이 예금주의 피해책임 유무 따라 피해보상액만 지급하는 등 사기피해에 대한 보상에 급급할 뿐 근본적인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포통장 명의제공자도 처벌을 하도록 하고, 대포통장 의심계좌의 경우 의무적으로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를 발급토록 하는 국회에 발의된 전자금융거래법, 금융사기 방지 특별법 개정안이 절실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포통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더라도 수법이 교묘해지는 전자금융사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며 "경찰과의 협업을 통해 사기범들의 수법을 공유해 사기피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금융권과의 정보교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농협의 경우 평생 땀 흘려 모은 예금을 하루아침에 도난당하는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금감원과 경찰 등 유관기관은 더 실효성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대포통장을 근절하는 법안이 하루빨리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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