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사고 보상 합의에도 풀리지 않는 3대 의혹
이데일리 안전관리 소홀·경기과기원 직접 관여·성남시장 참석 이유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에서 발생한 환풍구 추락 사고에 대해 이데일리-유가족 협의체-성남시-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보상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몇 가지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 향후 근본적 안전대책을 위한 원인규명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행사 주관사인 이데일리 측이 당초 2억원의 예산을 7000만원으로 줄여 행사를 추진해 안전관리에 소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다.
19일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이데일리 측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하 경기과기원)에서 3000만원, 성남시에서 1000만원, 2개 기업체에서 3000만원 등 총 7000만원을 협찬 받는 방식으로 예산 조달 계획을 세웠다. 당초 2억원에 행사 예산을 책정했던 것에 비해 1억 3000만원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이데일리 측은 7000만원 가운데 4000만원을 행사 기획과 진행, 공연 현장관리 등 행사 전반을 담당하는 이벤트 회사의 용역비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연기획사 대표 김모 씨는 20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이번 사고가 발생한 판교 축제와 비슷한 규모(700~1000명 규모)의 행사라면 시설 설치비, 연예인 출연료, 행사 대행비 등 최소 1억원이 든다”며 “주관사 측은 이번 행사에서 4000만원으로 이 모든 비용을 댔다는 것인데 이렇게 예산을 적게 책정한다면 전문 안전요원을 행사 스태프로 대체하는 등 (비용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주관사인 이데일리 측에서 통상적인 행사 비용보다 현저히 낮은 예산으로 행사를 진행했다면 안전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데일리 관계자는 통화에서 “초기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2억원 정도 예산을 책정했지만, 실제 준비 단계에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조정하면서 예산을 적게 책정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예산을 당초보다 줄여 안전관리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데 대해서는 “사실 행사 대행업체에 모든 것을 위탁하고 있기 때문에 세부항목 평가를 하면서 진행하되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운영은 대행업체에 모두 맡겼다”며 “물론 관리감독의 부분에 (책임이) 있겠지만 무대설치나 안전요원 문제나 하나하나 예산에 간섭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경기과기원 무슨 역할 했는가?
이밖에 투신한 경기과기원 오모 과장(37)이 행사 주관사 소속이 아님에도 행사 계획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예산 지원 명목으로 주최 측에 이름이 올랐을 뿐이라는 경기과기원이 실제로는 이번 행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앞서 “(경기과기원이 제출한) 축제 계획서에는 안전요원 4명을 배치하는 것으로 기재돼 있었으나 현장에는 안전요원이 없었다”며 “안전요원으로 등재된 경기과기원 직원 4명은 자신이 안전요원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은 “해당 계획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기과기원의 오모 과장이 작성했으며, 행사 주관자가 아닌 오 과장이 왜 안전요원 배치 등의 내용이 담긴 행사계획서를 작성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경기과기원이 이번 행사에 1960만원을 지원한 사안은 사실관계가 파악된 것으로 알고있다”면서도 “경기과기원이 이번 행사에 직접 주최자인지, 간접 주최자인지는 경찰이 수사 중에 있으니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데일리 측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경기과기원은 산업단지 관리 주체다. 광장 전체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다. 사전에 경기과기원 측과 만나 행사 진행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관계자는 “경기과기원이 경기도에 보고했고 우리 내부 보고서에도 주최기관이라고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라고 표시돼있다”며 “어느 언론사가 (주최자가) 확정되지도 않은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경기과기원이 이번 행사에 직접 관여한 주최 측임을 재차 확인했다.
행사와 무관하다던 성남시, 그런데 이재명 시장은 왜 축제에 참석했나
아울러 이번 행사와는 무관하다는 성남시의 해명과는 달리 이재명 성남시장이 당일 축제에 참석했던 것을 둘러싸고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태다.
앞서 19일 판교환풍구사고대책본부는 “성남시는 이번 행사와 관련해 일체의 협의를 한 바가 없고, 그렇기에 예산 지원이나 행사계획에 대해서도 무관하다”고 못 박았지만, 일각에서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행사 현장에 20분전에 도착해 축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시장은 “주관사인 이데일리의 초청을 받아 축사를 한 것일 뿐”이라며 주최·주관과는 무관하게 행사장을 방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 브리핑에 따르면 경기과기원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서 성남시가 500만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진술해 대책본부와 성남시 측의 해명에도 사전에 협의가 있었다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성남시가 행사 이틀 전인 15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 1100만원의 이데일리 홈페이지 배너 광고를 의뢰한 사실이 밝혀져, 성남시가 이번 행사를 지원했으면서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성남시 측은 “1100만원은 통상적인 행정 광고 명목일 뿐 행사 지원 예산이 아니다”고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사망자 유가족과 이데일리, 경기과기원은 사고발생 4일째인 20일 새벽 대책본부의 중재 하에 보상 등 후속대책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한재창 유가족 협의체 대표는 이날 분당구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합의는 통상적인 판례에 준해 일정한 기준과 시기를 확정한 후 나중에 그 기준에 따라 보다 세부적으로 확정할 수 있게 했다”며 “합의 내용은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해 개략적인 내용만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 대표는 “유가족은 이 사건이 악의나 고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 점을 감안해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최소화되기를 희망한다”며 “이데일리 곽재선 회장께서 장학재단을 통해 피해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기로 한 결정에 유가족들을 대신해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데일리와 경기과기원은 장례비용으로 한 가구당 2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데일리와 경기과기원 간 피해배상 금액 분담비율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유가족의 청구 이후 30일 이내에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