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악플’ 뚫고 흥했다…유쾌한 뮤지컬 ‘프리실라’
성소수자 다른 쇼 뮤지컬, 편견 순식간에 무장해제
고영빈·이지훈·김호영 ‘여장 남자’ 연기 볼 만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오히려 관객들이 강요받고 있었던 건 아닐까.
뮤지컬 ‘프리실라’는 개막 전부터 ‘드랙퀸(여장 남자)’을 소재로 한 파격적인 내용 탓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심지어 미디어콜을 통해 공개된 조권의 의상이 적잖은 후폭풍을 몰고 오면서 작품에 대한 관심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 결코 심각하지 않다. 억지로 감동을 짜내지도 ‘편견’을 버리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화려한 의상, 휘황찬란한 LED 조명 등 화려한 무대를 바탕으로 한 유쾌한 웃음과 적당한 수위의 풍자, 과감한 퍼포먼스가 가득하다.
‘프리실라’는 시드니의 한 클럽 쇼에 출연 중인 틱이 슬럼프로 고민하던 중 헤어진 아내로부터 쇼에 출연해 달란 제의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틱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8살 아들 벤과의 만남이 두렵지만, 결국 다른 2명의 드랙퀸 친구들을 설득해 위대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을 여정을 돕는 버스, 그것이 바로 ‘프리실라’다.
관객들이 이 작품 관람하기 위해 애써 편견을 접어야 할 이유도, 불필요한 걱정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간혹 수위 높은 의상과 몸동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드랙퀸들의 자극적인 사랑과 갈등 대신 가족애, 우정, 의리 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공감대를 끌어낸다.
험난한 사회 속에서 성 소수자로서 겪는 아픔은, 쇼 뮤지컬 본연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작품 속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녹아들었다. 이들의 눈물은 유쾌한 웃음으로 승화됐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의 편견은 순식간에 무장해제 된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라는 일본의 유명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마돈나, 신디 로퍼, 도나 썸머, 글로리아 가드너 등 70~80년대 유명 팝스타들의 히트 팝 넘버들도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처음부터 관객들의 귀에 꽂히는 넘버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갖는 또 하나의 무기다.
배우들의 호연도 칭찬할 만하다. 짙은 메이크업과 하이힐, 여자들도 쉽게 소화할 수 없는 파격적인 패션을 소화함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중성적인 매력의 이들의 말투, 몸짓, 손짓 하나하나가 시종일관 흥미롭다.
특히 트러블 메이커 아담 역의 김호영은 대안을 찾기 힘들만큼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마돈나에 빙의된 듯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인 의상도 압권이다.
우아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버나뎃 역의 고영빈은 알고 보지 않으면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180도 변신해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어느덧 가수가 아닌 뮤지컬배우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이지훈도 프리실라 팀을 꾸리는 틱 역을 맡아 제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다만 이 작품이 관객들을 확 끌어당기는 힘이 약한 건 사실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을 움직이는 20~30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소재가 아닌 데다, 굵직한 스타도 등장하지 않는다. 화려한 무대 역시 한국 관객들이 선호하는 코드는 아니다.
그럼에도 공연 후 관객들의 반응은 이 작품의 전망을 밝게 한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또 보러 오겠다”고 다짐하는 관객들도 다수 보였다. 뮤지컬 흥행에 관객들의 입소문이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김호영, 고영빈, 이지훈 외에도 조성하, 김다현, 조권, 마이클 리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9월 28일까지 LG 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공연문의: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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