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 홍명보호, 일주일 만에 이룬 ‘반전의 원팀’
가나와의 평가전서 보여줬던 무기력증 떨쳐내
살림살이 도맡은 한국영 덕에 중원싸움 승리
잘 싸웠다.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홍명보호가 러시아의 압박을 떨치는데 성공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8일(한국시각) 브라질 쿠이아바에 위치한 아레나 판타날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와의 H조 1차전에서 1-1로 비겼다.
한국은 후반 23분 교체 투입된 이근호의 선제골로 앞서나가며 승리 가능성을 높였지만 불과 6분 만에 케르자고프에게 동점골을 허용, 아쉬운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이로써 한국은 알제리를 2-1로 꺾은 벨기에(승점3)에 이어 승점1로 러시아와 함께 H조 공동 2위로 출발했다.
일주일 전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끔찍한 0-4 패배를 당했던 점을 감안하면 나름 훌륭한 경기력이었다. 특히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였던 중원싸움에서 밀리지 않자 홍명보 감독 말대로 ‘지지 않는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역시나 ‘원팀’의 완성이었다. 사실 가나전에서 선수들은 기량 차가 크게 벌어지자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축구팬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물론 본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부상을 조심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승리에 대한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정신력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대표팀은 홍명보 감독이 지난해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며 강조한 세 가지를 해냈다. 하나의 팀과 하나의 정신, 그리고 한 골이었다.
선수들은 90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발산했다. 실수가 있더라도 박수를 쳐주며 서로를 격려했고, 터치라인으로 나가는 볼에도 끝까지 달려가는 투혼으로 러시아 선수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무엇보다 ‘원팀’이 가능해질 수 있었던 정점에는 후방에서 살림을 도맡은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이 있었다. 이날 경기의 MOM(Man of the Match)은 왼쪽 날개 손흥민으로 선정됐지만, 사실 한국영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성용과 함께 포백라인 바로 앞에 위치한 한국영의 임무는 단순했다. 상대 패스 길목을 차단하고, 침투해 들어오는 선수들의 움직임 봉쇄가 전부였다.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이었지만 이를 제대로 수행해내는 선수는 유럽에서도 드물 정도로 어려운 숙제였다. 그리고 한국영이 이를 해냈다.
한국영은 전, 후반 내내 러시아 미드필더들을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중앙 공격보다 좌, 우 측면을 이용한 공격 루트를 강요받았는데 그 때마다 또 한국영이 나타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영의 활약은 볼 점유율과 주도권 싸움의 우위로도 이어졌다. 특히 한국영의 뒤치다꺼리로 같은 포지션에 위치한 기성용이 좀 더 공격적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 수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불안요소는 역시나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이다. 이날 박주영은 단 한 개의 슈팅도 만들어내지 못한 뒤 후반 10분 이근호와 교체됐다.
홍명보 감독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이근호가 있을 때 좀 더 강한 공격작업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근호는 후반 상대 수비수들이 지쳤을 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둘의 역할을 맞바꾸는 것도 고려해볼만하다. 체력이 뛰어난 이근호는 홍 감독의 기대대로 최전방에서 쉴 새 없는 움직임은 물론 압박까지 가능한 공격수다. 경기 초반 기세 싸움을 위해 이근호를 넣고, 후반 수비수들의 발이 느려졌을 때 창의적인 움직임이 뛰어난 박주영을 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러시아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경기 전 기자 회견에서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알 필요는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확 달라진 대표팀 경기력에 초조한 표정으로 연신 땀을 닦아댄 카펠로 감독이다. 일주일 만에 이뤄낸 원팀에 국민들은 크게 환호했고, 하나가 된 정신력은 2차전 상대 알제리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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