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있는한...여석기가 있는한...
<장두이의 아름다운 문화세상 226>연극평론을 열어나간 선구자의 명복을 빌며...
“셰익스피어가 인류의 문화예술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연극도 결코 사라지지 않지!”
평소에도 매우 학술적이며 객관적인 논평의 일침을 통해 우리 연극계를 부흥시키고자 평생의 노력을 기울여 오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전문 학자이시며 한국 연극의 원조 평론가이신 여석기 선생님께서 안타깝게 타계하셨다.
필자는 선생님을 통해 연극에 입문하게 된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
1970년도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선생님의 명강의 ‘연극개론’을 들으며 연극에 심취하게 되었다. 마침 선생께서 고대 연극 동아리인 ‘고대 극예술 연구회’의 지도교수여서, 늘 옆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 연극의 혼과 세계 연극의 흐름을 면면히 갈파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1900년대 초 신극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 연극에 대한 올바른 평론을 정립시키시며 우리 연극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많은 업적을 쌓으신 분이다. 필자 또한 한창 연극에 대해 열심을 다할 때인 1970년부터 1980년까지 최고의 연극 평론집 ‘연극 평론’이란 잡지를 통독하며 연극에 대한 꿈과 전문 지식을 키웠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선생님께선 자비를 들여가며 잡지를 발간 하셨다.)
그때 잡지에 실린 국내 연극과 해외 연극의 평과 세계 연극계의 흐름 그리고 잡지 끝에 늘 게재되었던 새로운 희곡 문학의 소개는 우리 모두에게 영양 만점이었다.
이러한 평론 외에도 선생님께선 국내 연극의 발전을 위해 희곡 문학의 개발과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남산 드라마센타에서 ‘극작 워크숍’이란 아카데미 체제를 주관하셨다. 이 워크숍을 통해 현재도 활동하는 오태석, 윤대성, 이강백 등 국내의 대표적인 극작가들이 배출되었다. 필자 또한 이 워크숍에서 극작술을 터득하고 공부했지만 이것이 요즈음 각 대학에 실존하는 극작과와 문창과의 전신이 된 셈이니 선생님은 연극 분야에 있어 실로 대단한 선구자이시다.
1978년 이후 필자가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 미국의 서점과 ITI(국제 연극 협회) 사무국에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한국 전통연극과 한국 현대 연극에 대한 많은 논문과 서적을 볼 수가 있었으니, 우리 연극의 외국 소개에도 매우 적극적이셨던 분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선생님의 번역을 뛰어넘는 우리 연극에 대한 외국어 번역 책도 별로 없으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이 세계적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던 게 미국의 연극 평론가 Walter Kerr란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오늘날 한국 연극의 초석엔 이처럼 선생님의 업적이 큰 몫을 한 것이다.
연극은 있지만 미래를 가이드해 주고 세계 속에 우리 연극의 정체성을 고취시킬 수 있는 진정한 평론가 하나 변변히 없는 우리 풍토에 선생님의 체취가 무한 그립고 아쉽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
좋은 약이 달지 않고 쓰듯이 매서운 평론이 있어야 더 나은 연극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요즘 양산되는 달콤한 약처럼 도대체 약발이 없으니 보고 싶은 좋은 연극이 그래서 없는가 보다.....!
선생님!
천국에서도 우리 연극 굽어보시며 내려주실 논평을 앙망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글/장두이 연출가·배우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