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양, 이 꼴이 됐습니다" 관치금융의 그림자
낙하산 인사 원인, 양의 지대와 규제산업의 결합
정치권→감사원→모피아→금감원→금융기관 먹이사슬
"10년 이상 리딩뱅크였던 국민은행이 어느순간부터 사고뭉치은행으로 전락했다. 지금 이 순간 KB금융그룹 가족만큼 잃어버린 10년에 대해 절실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10년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다. 왜 그럴까. 아무리 원인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단 하나 관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지금 일어난 사고는 창구직원들에게서 일어난 사고라며 너무 논리 비약아니냐며 의문부호를 던지는 분들도 있다. 물론 맞다. 하지만 최고경영자 덕목 중 금융전문가라는 덕목이 얼마만큼 비중을 차지할까. 그런데 낙하산 인사는 들어올때 논리로 명분을 삼는다. 어느 조직 마찬가지지만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가치가 기본으로 전제 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조직의 자긍심을 가지게 하고 현실을 느끼게 한다. 그런 것들이 내가 펼치는 역량보다 더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금고에 있는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고 서류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과연 외부에서 낙하산 타고 오시는 분이 자긍심을 주었을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낙하산 타고 오신 분들이 어떻게 조직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알겠느냐. 기업문화 모르니까 직원들 동기부여를 시키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 경영철학마저 찾아내지 못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CEO는 직원들의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금융 모 회장께서는 직원들 들어오자마자 비만증 환자로 비유했다. 과연 직원들이 그 소리를 듣고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느끼겠는가? 내 역량보다 초과해서 빛을 바랄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모양 이꼴이 됐다. 그래서 관치가 이 상황을 만든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성낙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모피아", "관피아", "청피아", "해피아" 등 세월호 침몰 사고로부터 우리 사회 깊숙히 뿌리박고 있는 낙하산 인사와 부패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낙하산 인사의 원조격인 금융권 "모피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례로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논란은 낙하산 인사와 더불어 후진적인 지배구조에서부터 비롯됐다.
이같은 논란은 금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는 전문성과 책임성에 입각한 정상적인 경영이 아닌 과도한 실적지향주의를 만들었다. 관치금융의 고착화는 금융 감독기능마저 무력화시켰다.
금융권 내부에서도 '줄서기'가 횡행하고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 지우기'식 인사가 이어지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한탕주의'마저 고개를 들면서 내부통제가 허술해져 금융사고로 발전해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금융그룹의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지주회사는 '옥상옥'으로서 막강한 권한만 행사하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 있다. 기형적인 구조인 것이다.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금융권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68조원의 금융권 공적자금 투입에서부터 2003년 카드대란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탐욕, 저축은행 PEF부실대출 사태, 동양그룹 사태, 키코 사태,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기대출, 부실채권 불완전판매가 단적인 예다.
국민의 신뢰하락과 부정적인 인식 뿐만 아니다. 금융권의 부실 확대는 경제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또한 국민들의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금융부분 낙하산 인사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발표와 토론에 나선 토론자들은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논란을 사례로 들며 낙하산 인사와 관치의 문제점들을 꼬집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KB사태의 발단에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 KB금융지주의 최대 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실제로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 임명을 좌우해왔다"며 "외부 인사들이 경영진을 독차지 하는데다 이마저 수시로 바뀌다보니 금융회사는 장기적인 경영전략없이 내부적으로 갈등이 고조됐다"고 말했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금융권의 모피아는 관피아 문제의 원조격"이라며 "전문성이 결여되고 자질도 검증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민병두 의원실 내부자료에 따르면, 금융권 낙하산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24명에 이른다. 금융지주 41명, 시중은행 45명, 손해보험 8명, 생명보험 9명, 증권회사 21명 등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청와대, 정치권, 금융위, 금감원으로 이어지는 관치 금융이 금융회사를 위시해 한국금융의 고위 경영층을 점령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 직원들의 사기저하와 비전상실, 낮은 윤리의식 수준 속에서 사건사고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욱 이사회의 자기권력화도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심각성이 크다. 사외이사제는 경영자가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경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하고 경영자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는데 목적이 있다.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KB금융은 지주사 회장이 직접 사외이사 후보자 추천위원회에 참여해서 사외이사를 선출하고 있다. 회장에 의해 선출된 사외이사는 다시 회장과 행장 선정을 위한 회장 후보자 추천위원회나 계열사 대표자 추천위원회에 참여해 회장과 행장 선전에 직접 개입한다. 악어와 악어새와의 공존관계를 보이는 셈이다.
결국 금융지주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이사회를 무력화하고 주요한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더욱 본인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통해 본인의 연임을 결의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윤 교수는 "과거 작동했던 행장추천위원회, 이사추천위원 등의 보완 방안을 고려할 때 사외이사나 외부인사, 노조 추천 인사 등으로 임추위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낙하산 금지법을 토대로 임추위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고 채용절차와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하산 인사 가능케 하는 규제
낙하산 인사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양의 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떡고물이 있기 때문에 낙하산의 그늘을 지울 수 없다는 뜻이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인사는 자연스럽게 떡고물을 지키키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금융산업이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금융감독 기구는 피감 기관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영향력 행사를 할 수 있다. 금융산업은 진입장벽을 보호받을 수 있는 불완전 경쟁 산업이어서 언제든지 떡고물이 발생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떡고물을 차지하기 위한 감독당국의 지대추구 행위는 자연스럽게 금융기관 낙하산 인사로 귀결된다"며 "금융기관이나 감독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권, 감사원은 제2차적 지대추구행위를 통해 별도의 낙하산 투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치권→감사원→모피아→금감원→금융기관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형성하게 된다.
전 교수는 이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금융기관 임원의 자격요건을 강화해 3년 이상 금융분야 종사 이력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금융기관 임원에 대한 책임성이 강화되야 한다고 제기했다. 금융기관 임원 중 이사와 감사 이외의 임원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대표이사와 감사의 연대 책임을 법조항에 명시해야 한다는 것.
그간 금융회사 내부에서 불법행위 발생이 우려될 경우 대표이사나 감사가 그 가능성에 대해 보고 청취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그 책임을 하위의 업무집행책임자 등에게 전가하는 행위도 빈번했다. 여기에는 금융지주회사의 책임성도 포함된다.
금융시장 환경 개혁과 관련해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보다 금융기관의 설립 근거법률의 규정이 우선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기재부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법률 제2조2항과 3항에는 "공공기관에 대해 다른 법률에 이 법과 다른 규정이 있을 경우 이 법에서 그 법률을 따드도록 한 때를 제외하고는 이 법을 우선해 적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국민 대표성의 향상 여부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실제 법률상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 엄청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운영위원 구성에 국민대표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허수아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주문했다.
더욱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류 중 제35조 이사와 감사의 책임 문제다. 기획재정부장관이나 주무기관 장은 공공기관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비상임이사와 감사를 해임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민간회사와 같이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문책을 단행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책임을 묻게하는 주체가 없다.
김 교수는 "공공기관에는 외부 주주가 없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잘못할 경우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없다는데 있다"면서 "정부 이외의 일정 조건을 갖춘 이해관계자가 공공기관의 잘못을 물을 수 있도록 기재부장관이나 주무장관에 대해 책임 추궁을 하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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