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사고, 또 사고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연이틀새 화재 사고 잇따라 국민들 불안감 증폭
전문가들 "세월호 참사이후 '인지적 편견' 작용"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도 전에 잇따라 각종 안전사고가 터지면서 대한민국이 불안감에 신음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지하철, 버스, 병원 등 시민들의 발길이 자주 닿는 곳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가 연달아 발생함에 따라 ‘위험사회’라는 그늘이 또 다시 우리 국민의 일상을 뒤덮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이제는 정말 이 나라가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볼멘소리가 사회전반에서 쏟아지는 있는 실정이다.
50대 주부 이모씨는 “요새 뉴스를 보면 속된 말로 이 나라에 망조가 들었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터지는 안전사고를 접하면서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불안감만 늘어간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이어 “특히, 세월호 참사로 한 달 넘게 우울했는데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계속해서 큰 사고 발생하니 더욱 혼란스럽다”며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엔 이 나라가 정말 내 안위를 믿고 맡겨도 되는 곳인지 모르겠다. 두렵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안전공학과를 전공한 30대 회사원 김모씨(남)도 “과거 삼품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고도 계속해서 재난사고를 답습하는 것이 개탄스럽다”며 “세월호 사태를 포함해 최근 발생했던 사고들 대부분이 천재지변 등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피’한 사고가 아닌 애초에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에 기인한 것 아니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이어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고가 나도 이렇다 할 정부의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고만 발생했다하면 대참사로 번지는 것이 답답하다”면서 “언제라도 제2의 세월호가 터질지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들의 지적대로 올해 초부터 발생한 재난사고들은 대체로 부실한 시공, 관리감독 체계에 기인한 것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올해 2월 대학생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역시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가건물 위에 쌓인 눈을 제때 치우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고, 심지어 앞서 19일 하루에만 금정역 폭발사고와 대구 사대부고 화재, 당인리 발전소 폭발사고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 모두 자연재해와는 관련 없는 부실한 안전점검에 따른 것이었다.
이 뿐만 아니다. 지난 26일 발생한 경기 고양시외버스 종합터미널 화재는 고층이 아니고 다중이용시설의 2층에서 사망자가 5명이나 발생했다는 점에서 재난 대책이 얼마나 부실한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이 사고 발생 시간과 장소가 소방 인력의 접근성이 용이했던 도심이었던 점 등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눈 뜨고 아웅’했다는 비난이 무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전날 사고의 생채기가 가시기도 전 이튿날 27일 오후 5시56분쯤 경기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산업폐기물 처리업체 3층짜리 건물에서 화재가 나고 28일에는 전남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을 포함, 이날 오전에만 3곳에서 불이 나는 등 매일같이 안전사고가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연달아 터진 사고로 인해 일종의 ‘인지적 편견’이 작용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채규만 한국심리건강센터장(전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월호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연이어 재난사고가 계속해서 터지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인지적 편견’까지 생기게 됐다”며 “마치 모든 사고마다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 돼’ ‘위험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는 식의 무조건인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안전전문가도 “사실, 그동안 우리사회 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면서 “다만, 세월호 사태로 인한 충격이 아직도 국민들 머릿속에 크게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니 그 여파가 더 크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아울러, 우리사회가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놓쳤던 복지·안전 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높아지면서 이번 사고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더 거세진 것 같다. 이는 과거 일본, 미국, 유럽에서도 답습했던 과정”이라면서 “이번 사고들을 통해 우리사회 내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뿌리채 뽑아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식의 지나친 비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채 교수도 “어떤 문제에 대한 비난을 위한 비난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며 “이번 사고들을 계기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정부를 비롯한 우리사회 전반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의 불신과 냉소, 편견은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전반적으로 깔린 불확실성이 여론 불안 증폭시켜”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태 이후 정부가 이렇다 할 대책마련이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잇따라 대참사가 터지면서 국민적 불안의 불씨를 당겼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모임 사회실장은 29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정부가 세월호 사고 이후 큰 틀에서 각종 대형 사고와 관련, 예방 및 대처 개혁안을 내놓긴 했지만 아직 미완성에 가까웠다”면서 “국민들이 느끼기엔 앞으로 대형사고 발생 시 ‘어떻게 구조 대책이 이뤄질지’ ‘어떻게 예방할지’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었던 상황에서 잇따라 사고가 터지니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또 “여기에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속보성 사고보도 행태도 여론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한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며 “이 때문에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정보의 불확실성, 정부 대책의 불확실성 속에서 연이어 대형 참사를 목도하니 비관적으로만 사회현상을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이 같은 여론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정부의 구체적인 안전대책 마련과 함께 ‘몰아붙이기 식’ 언론 보도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외신들도 이날 장성요양병원 화재사고를 세월호 사태와 함께 다루면서 고도 압축 경제 성장기를 지나온 한국이 개발 논리에 밀려 안전을 뒷전에 둬 온 역사적 배경을 주목하기도 했다. AP통신은 “한국은 1950~53년 한국전쟁의 폐허와 빈곤에서 아시아의 4번째 경제로 급성장한 나라”라며 “화재는 이런 한국의 오랜 안전의식 부재와 부실 논란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짚었다.
뉴욕타임스는 “일련의 사고는 한국의 공공 안전 대책에 대한 신뢰를 깍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AFP통신은 더 나아가 “집권 새누리당이 다음주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유권자의 반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번 사고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전하는 등 앞으로 정부가 세월호 사건와 함께 일련의 사고들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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