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통령' 자임하는 정치인들이 더 위험하다
<굿소사이어티 칼럼>경제는 지도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살아나는 대상 아니야
개인이 저축하려는 의지 없고 기업이 투자하려는 의지 없으면 창조경제 요원
2003년까지만 해도 세계 11위 경제 규모를 자랑하며 10대 경제 강국 진입을 눈앞에 뒀다고 여겼던 한국 경제가 최근에는 16위로 밀리게 된 바, UN 회원국이 210여 나라이니 경제의 총규모가 세계 16위권으로 밀려도 총규모 지표로 볼 때 우리의 국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2.3만 달러인데 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40위권 안팎에 불과해 G 20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목표는 1인당 소득으로 G20 아니 G10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문제는 활력이 넘쳐야 할 기업이 탈진한 상태이고, 수동적 입장이어야 할 정부가 적극적인 데 있다. 작금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정부가 문제의 해결사이기는커녕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다. 기업은 대외 경쟁과 각종 질곡에 억눌려 힘이 쇠진해지고 있으며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정부에게 ‘캠퍼 주사’와 당의정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귀중한 자원을 생산성이 없거나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계속 투입하여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는 데 있다. 진단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재정운영 과정에서 세금이 모자라 국․공채를 발행하여 조달한 자금도 새로운 가치창출과는 무관한 비생산적인 사업에 방대한 규모로 투입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저축률과 투자율의 하락
경제의 수많은 지표 중 가장 중요한 지표는 저축과 투자이다. 저축과 투자는 각각 개인과 기업의 ‘경제 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최근의 저축률과 투자율의 하락은 매우 우려할 사항인데 정책 당국과 전문가들은 이를 주목하지 않고 있다. 낮은 저축률과 투자율은 국가적 재앙 도래의 전주곡이다. 재앙이 오기 전에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과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아무리 정책을 잘 못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계속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9세기 말 북미의 미국과 남미의 몇 나라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선진국이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 남미의 옛 선진국들은 계속 추락하고 있으며 빈부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어느 정당 어느 지도자가 어떤 정책을 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크게 요동쳐 왔다.
진보(좌파) 진영과 보수(우파) 진영 간의 이념적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있어 왔으나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대립은 그 정도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최근 정치와 정책을 두고 정파 간의 대립이 논쟁의 수준을 넘어 죽기 살기 식 투쟁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 같은 정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집단 간에 정책을 두고 파열음이 들린다. 때론 특정 정파 안에서의 논쟁이 서로 다른 정파 간의 논쟁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됨을 본다.
정책 대립의 근원은 결국 이념대립
외형상으로는 논쟁이 매우 뜨거운 것 같으나 정치적 개인적 동기에서 수사적으로 이념을 이용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도대체 보수가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인지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없이 편가르기나 상대방을 비난하고 제압하는 수단으로 논쟁이 공허하게 진행되는 것이 정말 큰 문제이다.
이념은 개인 차원에서나 정당 차원에서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갖고 각 기의 존재 이유와 결부된다. ‘정치의 장’과 ‘정책의 장’의 연결고리가 이념이라는 사실이 인지되고 있지 못하다. 국가의 중요 정책들의 우선순위와 구체적 내용을 두고 진보ㆍ좌파와 보수ㆍ우파 간의 극명한 대립은 각자가 착용하고 있는 이념 안경의 색깔 차이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념의 차이에 따른 정책 대립을 과학적 논의로써 해결하려는 노력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정책에서의 이념의 중요성을 모르고 이념 자체에 대한 인식이 不在(부재)한 상태에서 정책을 논의하다 보니 정책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겉돌기만 한다.
사실 경제정책에 관한 논쟁의 대부분은 가치판단(value judgement) 즉 이념의 차이에 기인한다. 두 사람의 경제학자가 주어진 어떤 문제에 대한 공청회에서 완전히 다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많은 경우 이들의 견해 차이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경제 원칙과 이론에 대해서 합일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한 시민으로서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하여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계속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현재의 정부 규모가 너무 비대한 것이 아닌가에 관한 논쟁과, 복지를 확대해야 하느냐 축소해야 하느냐 하는 논쟁은, 어떤 결정적인 경제이론이나 실증적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기보다는 비대한 정부는 곧 개인 자유의 침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사상과, 국가가 소득재분배 등의 경제활동에 더 관여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주의 사상 간의 사상 대립이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좌파들이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복지 논쟁에서 이념 수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념과 정책은 같은 맥락이다. 이념을 떠나 정책이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 간에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논쟁을 하면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비록 불완전하나 역사에서 답이 구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는 좌파(진보)의 공상적 사회주의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가 모두 실패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대정신 꿰뚫는 지도자의 등장에 우린 목마르다
정권과 관계없이, 여야 관계없이 지도자들은 역사적 통찰력이 부족하여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위대한 지도자와 나라의 번영은 언제나 함께 했다. 지도자는 시대정신을 창출하여 국민을 앞에서 끌고 나가는 사람(leader)이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와 같이 지도자가 국민의 눈치를 보는 추종자(follower)이어서는 참으로 곤란하다.
리더십의 힘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혼란기나 위기 때 리더십이 더욱 빛난다. 리더 스스로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추종자들을 확신시킬 수 있고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세계적 칼럼니스트인 부크홀츠(Buchholz)는 20세기의 가장 성공한 경제정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일련의 경제정책을 든 바 있다.
전쟁 후의 참혹한 폐허와 엄청난 혼란 속에서도 에르하르트(Erhard) 수상은 가격통제를 과감히 해제하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등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일련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여타의 선진국들이 年 1~2%씩 성장하는 데 반해 독일 경제는 연간 6~7%씩 성장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라인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현실의 경제가 어렵다 보니 여야 지도자 모두가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며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자임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 우선주의는 굉장히 잘못된 주문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지도자들이 약속하는데 경제는 지도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살아나는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낮은 세금, 정부 보조, 행정 지도, 낮은 이자율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잘못된 지도자, 잘못된 정책이 경제를 망치기는 쉽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제하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의 정치게임에 싫증난 민초들은 위정자들로 하여금 제발 정치를 제대로 하여 국민들이 각자 차분히 편안하게 살도록 해 달라는 주문을 해야지, 흐트러진 정치를 팽개친 채 정치논리를 들이 밀며 경제에 올인 하도록 요구하면 경제는 더욱 망가지게 되고, 잘 사는 것은 요원해진다.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크다.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 경제의 각종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민을 설득시키는 정치적 결단을 이루어 내거나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제도의 장기적 방향에 대해서는 정치 지도자의 이념과 결단이 큰 역할을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확고한 신념 하에 경제정책을 추진할 때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또한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영국이 쇠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대처(Thatcher) 총리의 뚜렷한 이념과 결단 덕분이었고, 뉴질랜드가 과감한 경제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이념과 방향이 뚜렷하고 굳건했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 이래 중국이 잘 나가는 것은 중국 지도자의 지도력 덕분이다. 사실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 시대에 우리 경제가 잘 나갔던 것은 경제에 관한 두 분의 신념, 결단, 지도력 때문이었다.
어떠한 경제정책이 성공하고 어떠한 경제정책이 실패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경제 원리에 충실한 정책은 성공하고 경제 원리를 거스르는 정책은 실패한다. 우리의 경우 경제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거래나 교환을 촉진하는 것이 모두에게 큰 이득이 된다는 것이 자명한 경제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거래를 제한하는 정책을 정치권은 스스럼없이 내놓고 있다. 아무리 강력한 정부라 해도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의 힘을 이길 수 없음에도 가격기능을 무시하거나 가격기능을 억누르는 정책을 다반사로 하고 있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 지금
잘 사는 국가 번창의 길을 놓고, 선각자들이 내놓은 수많은 처방의 핵심은 ‘제도와 지식’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 나라의 장기적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그 나라의 천연자원도 아니고, 문화적 자산도 아니며, ‘제도와 지식’에 있다. 훌륭한 제도와 지식의 핵심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정신인데 우리의 경우 반자본주의적 반시장적 정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으며 반자유주의 정신이 풍미하고 있다.
작금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 경제를 튼실하게 하기 위해서 근로자가 더욱 열심히 일하고, 가계가 더 많이 저축하고, 기업이 더욱 투자하여 경제 전체로 생산력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반듯한 지도자, 올바른 의식, 훌륭한 제도의 확립을 통해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자는 일보다는 여가에, 가계는 저축보다는 소비에, 기업은 시설투자보다는 재테크에 몰입하는 나라가 지속적으로 성장을 한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국가가 번창하는 길은 딱 하나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으로 와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국내 기업도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으며 새로운 기업 설립의 의욕은 낮아진 상태이다. 저축률도 투자율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기업의 시설투자 규모는 불변가격 기준으로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경쟁국들의 경우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몰려들고 있으며 시설투자가 날로 증대하여 성장잠재력이 계속 확충되고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기적을 창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무서워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시장을 억누르면 그 시장은 반드시 복수를 한다는 역사를 지도자가 깨달아야 한다. 곁가지 잔재주 놀이에서 벗어나 이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스미스(A. Smith)는 불후의 명저 ‘국부론’에서 “국가가 빈곤과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안정적인 정부(stable government), 예측 가능한 법률들(predictable laws), 부당한 과세가 존재하지 않는 것(absence of unfair taxation),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어떻게 240여 년 전에 국가 번영의 요체를 이렇게 간결하고 명확하게 지적할 수 있었을까?
경제에는 결코 우연이 없고 공짜가 없다
자유경제 체제에서 벗어나는 특단의 조치만으로 크게는 경제위기가 극복되고, 작게는 문제로 대두된 하나의 사안이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려운 국면이라 하더라도 문제를 순리대로, 원칙에 따라, 원천적으로 풀어야지 충격요법, 對症療法(대증요법)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경제에는 우연이 없고 결코 공짜가 없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적정비용을 지불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경제는 선택의 문제이다. 하나의 선택은 다른 것의 포기를 의미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동시에 다 가지려 하고, 그것도 공짜로 다 가지려 한다.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수용해야 하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야기된다.
원래 시장경제는 실패를 통해 학습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돈키호테처럼 해결사로 나서 시장을 대신한다면 정치의 풍요만을 낳을 뿐 경제적 풍요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프리드먼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갈파했다. 위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작금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 경제를 튼실하게 하게 하는 변화의 주된 내용은 근로자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일하게 하고, 하여금 더 많이 저축하도록 하고, 기업이 더욱 투자하도록 하여 경제 전체로 생산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최근의 저축률과 투자율의 하락은 매우 우려할 사항인데 정책 당국과 전문가들은 주목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1993년 23.1%였던 개인 저축률이 2010년에 2.8%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 저축률 2.8%는 OECD 평균 7.1%의 5분의 2 수준으로 참으로 놀랍고 우려할 사실이다.
1960년대 초 국민소득이 보잘것없었던 시절에도 저축률이 이렇게 낮지 않았으며 1960년대 이후 우리의 고속 성장은 높은 저축률에 뒷받침된 높은 투자 덕분이었다. 지난 두 정권의 최대 실책은 투자 하락을 방조한 점에 있다. 현 정부에 와서도 기업의 설비투자는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실질 GDP 대비 실질 설비투자 비중이 1991~1997년 동안 年 평균 13.9%에서 2000~2009년 동안 年 평균 9.6%로 크게 감소했다. 설비 투자는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2.0%, 10.8%씩 감소했다. 기업들이 여유자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기업이 금융기관에 맡기는 저축성 예금이 최근 30%나 크게 증가한 반면 실질 설비투자는 1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낮은 저축률을 놓고 제기되는 정책적 과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저축률이 왜 이렇게 낮은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낮은 저축률의 영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소득에서 소비를 차감한 것이 저축이므로 낮은 저축률은 소득에 비해 소비가 상대적으로 더 늘었음을 의미한다. 소득 증가는 과거와 같지 않은데도 세금, 사교육비, 통신비, 의료비, 대출이자 등 소비가 크게 늘었으니 저축률의 하락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지출의 내역을 보면 어느 하나도 뺄 수 없기에 가계나 개인은 저축의 여유가 없음을 너무나 쉽게 수용한다. 그러나 문제를 이렇게 안이하게 넘길 수 없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여유가 있어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저축률 하락은 현재와 미래의 소비에 대한 선택에서 현재의 소비를 선호하는 결과이다. 국민 모두가 먹고 놀기를 선호한 결과가 저축률 하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방정부•중앙정부 할 것 없이 과시적 소비에 혈안이고, 카드 문제•부동산 문제 등 정부의 잘못된 정책도 소비를 부추기고 저축의 여력을 앗아 갔다.
저축률은 가계의 건전성을 상징한다. 지난 외환위기는 기업의 부실에서 야기되었는데 국가채무 누적에 따라 정부 부실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가계의 부실이 첨가되면 우리 경제는 활력의 원천이 고갈된다.
모든 국민이 소비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언론 매체들은 일기예보를 하면서 일하기 좋은 날씨라고 하지 않고 놀기 좋은 날씨라 경쟁적으로 강조하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소비문화의 진작에 혈안이 되어 있고,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절약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뭔가 모자라는 사람으로, 사치와 허영에 탐닉하는 사람을 우상으로 부각시키는 풍토에서 저축하는 마음은 사라진다. 정부의 각종 시혜적 복지정책은 국민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미래지향적으로 살기보다는 의존적이고 찰나의 향락을 추구하도록 한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오늘날 저축이란 개념이 개개인의 사전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국가경쟁력 강화, 성장기반 확충, 고용 창출을 외치면서 기업의 시설투자 부진을 방치한 채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기업 설비투자의 계속적 부진으로 성장의 기반이 계속 하락하는 데 대한 근본적 대책의 마련이 절실하다. 국내 기업의 투자 확대는 물론 세계의 우량 기업이 대한민국에서 투자하도록 국운을 건 결단과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글로벌 우량 기업의 투자 위해 국운을 내건 결단을
국제적 위상과 소득 수준을 크게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복지확대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정책과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첩경은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기업이 발흥하고 기업투자가 활성화되면 경기가 회복되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복지확대는 저절로 가능해진다.
정부도 투자 부진의 문제를 인식은 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그 인식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으며 내용도 미사여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책의 발표는 있으나 끝까지 챙기는 책임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이 함량 미달이고,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으며, 정치권으로부터는 계속 헛방질이 나온다. 정치권과 정부는 재계가 규제완화와 사면 등 정부로부터 선물만 잔뜩 챙기고 아무것도 뱉어내지 않는 ‘먹튀’ 행각을 보인다고 불평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구호로 전봇대 몇 개 뽑고, 사면 선심을 베풀고, 재벌총수를 불러 ‘공격적 경영’을 해달라고 당부한다 해서 기업이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는 투자를 쉽게 할 리가 없다.
설비투자 확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결코 멀리 있거나 어렵지 않다. 기본에 충실하고, 잘하고 있는 나라의 경험에서 배우면 된다. 최근 우리를 추월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도 그 배경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외국 기업과 기술의 유치에 성공하여 투자가 왕성하기 때문이다. 예외가 없다. 투자는 기업이 한다. 기업이 원하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투자를 한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경제 정책의 초점을 기업의 투자활성화에 맞추자. 국내의 자금이 국내에 머물고 더 나아가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에 마음껏 투자되도록 여건을 확실히 만들자. 설비투자의 활성화와 외국 자본과 기술의 국내 유입은 나라 전체가 경제 특구화가 되면 가능하다. 잘 나가는 나라는 그 나라 전체가 경제특구인데 우리는 몇몇 지역에 특구를 만들어 놓고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통구(區)와 다름이 없다. 정치적 요인과 반기업 정서가 그 특구에의 투자를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의 투자활성화 정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해외 우량기업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다. 도저히 사업할 풍토가 아니라며 떠나는 기업들을 잡아야 한다. 외형적 양적 투자확대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포춘(Fortunes) 500대 기업 모두가 앞다투어 투자하고 싶어하는 여건을 가진 나라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임시투자세액공제의 유지 등 기술적 유인제공도 중요하나 국내•외 투자가들의 심금을 울리는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정부가 너무 설친다. 오늘날의 경제•사회•정치 등 모든 분야가 전문가의 눈에도 너무 복잡해졌고 그 움직이는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4차원의 공간 개념으로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민간부문을 자신의 이익과 논리를 앞세우는 관료와 정치가가 주체인 ‘느림보 정부’가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 만능인 곳에 투자자는 꽈리를 틀지 않는다.
경제의 기초체력 강화를 위하여
기초체력이나 체질이 강한 사람이 장거리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고, 때로는 감기에 걸리더라도 빨리 회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도 꾸준히 성장하고 외부 여건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질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 매우 복합적인 요인의 작동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이 약화되어 저성장으로 발현되고 있다. 따라서 저성장 체제에 대한 대응은 경제체질의 강화이다.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질을 구성하는 요소 또는 경제체질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경제체질을 가진 굳건한 경제를 나타내는 요소나 지표에는 첫째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근거한 경제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의지, 둘째 무한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창조적 정신, 셋째 과학기술 및 지식의 발전, 넷째 활발한 투자의욕과 높은 저축률, 다섯째 근로자의 작업기술 향상, 여섯째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구축 등 6가지이다.
이상의 여섯 가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 경제의 체질은 과연 강건하며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 간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부정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위의 지표 여섯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것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겪는 성장의 한계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으로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셋째 지표와 다섯째 지표는 잘 알려져 있고 외형적으로 많은 노력을 경주해 온 부문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기술개발과 인간개발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세계이다. 훈련되지 않은 인력은 자원이 아닌 부담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와 교육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창의성과 도덕성을 지닌 민주화와 국제화의 역군을 길러내게끔 과감한 자율화를 통한 교육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다 좋다. 두 가지 문제가 등장한다.
첫째는 수월성보다는 평준화를 주창하는 세력이 사회와 교육계를 지배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큰 방향에 합의해 놓고는 이에 따른 개혁에 오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추진되는 내용은 상당 부분 원래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모든 입시는 수월성 기준이다. 입시는 영화게임(zero-sum game)이기에 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불평불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의 갈 길은 수월성 추구를 염두에 둔 인적 투자와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외형적으로 살펴보면 두 번째 지표인 경제하려는 의지가 충일한 것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 잘 살겠다는 욕심만 가득 찬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도덕성, 윤리성,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경기규칙을 준수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히 경제하려는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는 공정한 경기규칙을 제정하고 제정된 경기규칙이 엄격히 집행되고 있는지를 꾸준히 살펴야 한다.
둘째 지표인 무한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창조적 정신, 셋째 지표인 과학기술 및 지식의 발전, 여섯째 지표인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구축 등은 이 나라 정치가와 진보 세력들이 무지와 역사 인식의 결여에서 휘두르는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친 서민, 공정사회, 상생과 공생 때문에 찬 서리를 맞고 있다.
'형평' 위주의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되고 고질화되어 있다. 형평'위주의 사고를 '효율'위주의 사고로 전환하는데 '정치인', '정부', '언론' 및 '지식인', '각종 사회단체'가 앞장서야 한다. 경제성장의 엔진(engine)이 기업인데 그 기업이 온갖 비난의 대상이고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재벌과 대기업이 동네북이 된지는 이미 오래이다. 정치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정부 전문가 일반국민들 모두 재벌 때리기에 오면 의기가 투합하는 것 같다. 제품시장이 독과점시장이다, 자금을 독차지한다, 문어발식 확장을 한다, 온갖 특혜를 누린다, 정경유착을 한다, 소유가 집중되어 있다,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 등 대기업과 재벌기업의 문제점에 대한 나열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재벌기업 대기업이 야기한다고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문제점의 대부분은 그들이 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문제발생의 근원임이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 정부정책의 실패를 호도하기 위해 재벌기업의 문제를 부각시킨 경우가 적지 않았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정책과 서비스는 불량품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매일 봇물처럼 쏟아 내는 정책의 대부분도 함량미달의 불량품이거나 재탕 삼탕한 것이어서 생선으로 치면 잡은 지 며칠이 지나 선도가 크게 떨어져 국민이 외면하는 것이고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것들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들의 실수와 실책의 결과인 불량품을 깨닫기보다는 많은 경우 잘하는 기업인들을 닦달하거나 속죄양으로 삼아 사태를 개선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포춘 500대 기업이 투자하려는 곳인가
여섯째 지표인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구축은 경제체질 강화의 핵심이고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구축은 바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확립과 정착을 의미한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 이전엔 이론적인 정형화가 어렵고 객관적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계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그래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경제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나옴에 따라 국제기구들이 정부 간섭 배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2002년 '시장을 위한 제도 구축'(Building Institutions for Markets)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자유시장제도를 통한 정보의 효율적 전달, 사유권 및 계약의 보장, 경쟁의 확보를 강조하였다.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해 우리나라만큼 일반의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 같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실패했고 만악(萬惡)의 근원이란다. 공황, 불황, 실업, 양극화 등을 경제적 재앙이라 부르고 그 재앙의 원인으로 자본주의를 비난한다. 재앙의 실질적인 원인은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 정부에 있는데도 말이다. 자본주의야말로 경제적으로 최고의 성공 사례이다. 지금껏 어떤 체제도 인간의 삶을 그만큼 발전시키지 못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옛날 왕이나 한 세기 전에 록펠러나 밴더빌트 일가에서도 불가능했던 풍요로운 선택권을 누리고 산다.
오늘날의 경제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가 전문가의 눈에도 너무 복잡해졌고 그 움직이는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4차원의 공간 개념으로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민간부문을 자신의 눈 앞 이익과 논리를 앞세우는 관료와 정치가가 주체인 느림보 정부가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정부가 계속 설치니 경제는 피멍이 들 수밖에 없다.
국가가 계속 성장 번창하는 길은 딱 하나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으로 와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국내 기업도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으며 새로운 기업 설립의 의욕은 낮아 질대로 낮아진 상태이다. 저축률도 투자율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기업의 시설투자는 불변가격 기준으로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경쟁국들의 경우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몰려들고 있으며 시설투자가 날로 증대하여 성장잠재력이 계속 확충되고 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경제정책의 초점을 기업의 투자활성화에 맞추자. 국내의 자금이 국내에 머물고 더 나아가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에 마음껏 투자되도록 여건을 확실히 만들자. 설비투자의 활성화와 외국 자본과 기술의 국내 유입은 나라 전체가 경제 특구화가 되면 가능하다. 잘 나가는 나라는 그 나라 전체가 경제특구인데 우리는 몇몇 지역에 특구를 만들어 놓고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통구와 다름이 없다. 정치적 요인과 반기업 정서가 그 특구에의 투자를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의 투자활성화 정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해외 우량기업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다. 도저히 사업할 풍토가 아니라며 떠나는 기업들을 잡아야 한다. 외형적 양적 투자확대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포츈(Fortunes) 500 대 기업 모두가 앞 다퉈 투자하고 싶어 하는 여건을 가진 나라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비 교역 비경쟁 부문의 개혁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은 비 교역 비경쟁 부문의 개혁이다. 대표적인 비경쟁 비 교역 부문은 정치 사법 언론 공공부문 그리고 대학이다. 현 정부를 포함하여 역대 정부가 경제 개혁에 치중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경제는 범 지구적으로 치열한 경쟁에 처해있기 때문에 크게 보아 경제는 정부가 개혁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변화하고 개혁을 한다.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버티고 있는 정치 사법 언론 공공부문 대학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들 5개 부문에 과감한 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어느 경우든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유효한 처방이 문제해결의 선결과제이다. 경제체질의 강화로 표현된 진단과 처방이 우리 경제의 현안문제 해결과 또 다른 도약을 위한 핵심이다. 문제는 진단과 처방이 아무리 제대로 이루어지더라도 누군가에 의하여 추진되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경제체질 개선의 여부는 사회지도계층의 손에 달려 있다. 사회 지도계층이 우리 경제체질의 구조적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사회기강을 세우며 헌신적으로 노력할 때 우리의 경제체질은 강화되는 것이며 우리나라는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글/최광 한국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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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단행본 '자유의 위기'에 실렸던 논문 '한국경제문제의 본질과 발상의 전환'이며, 이를 토대로 필자가 수정 보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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