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휘]'펄펄 나는 괴담에 뒷북치는 대응' 언제까지...
<칼럼>디지털 시대에 맞는 디지털 여론 대응시스템 만들어야
“발없는 소문이 천리를 간다.” 옛 속담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소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소문만큼 빠르고 무서운 것도 없었다. 속담은 그런 위력을 은유한 것이다. 소문 외에는 달리 접하는 매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방식의 매체방식도 있었다. 정확한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왕들은 고심했다.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고, 암행을 통해 직접 백성들과 만나기도 했다. 백성들도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불만과 풍자를 표현한 것이다. 참요라는 것이 있다.
요즘 같으면 CM송 같은 것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을 노래로 표현한 것들이다. 조정에 대한 불만이나, 왕에 대한 비판 같은 것들을 노래로 풍자했다.
벽서라는 것도 있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일종의 대자보다. 은닉서라고도 하는데, 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익명으로 붙였다. 사회욕구 불만을 해소하는 분출구 역할을 한 것이다. 병폐도 많아 정조 때는 단속을 하기도 했다. 벽서를 보고 말을 전하는 자는 곤장 80대, 벽서를 붙인 자를 잡으면 은 열냥을 내걸기도 했다.
소문이나 노래, 벽서 같은 것들이 시대상황 반영하는 매체였던 것이다.
시대는 많이 흘렀다. 지금은 신문, 방송, 인터넷이 있다. 이외에도 스마트폰을 비롯한 SNS 등 수많은 매체가 있다. 개인 미디어 시대라고 부른다. 소문과 벽서, 풍자노래에 의지한 것을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재미있는 것이 있다. 전통사회의 매체는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 그렇기에 온돌방의 온기와 같았다. 서서히 달아오르고 식었다. 사실 확인과 통제가 강하면 쉽게 진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비용부담도 그만큼 크지 않았던 이유다.
반면, 현대사회의 매체는 철저한 사실 확인을 통해 전달된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으면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회적 책임도 물게 된다. 검증되고 걸러진 사안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이나 SNS를 활용한 개인간 소통이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소문이 이런 창구를 통해 증폭되는 것이다. 일종의 ‘엿보기’심리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우월심리의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정보의 우위에 있음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 “발없는 소문을 순식간에 지구 한바퀴 돌게 한다.”
인터넷이나 SNS의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탓이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여유가 없다. 이로 인한 병폐는 수도 없이 많다. 사회적, 정치적 비용도 엄청나다. 철저한 디지털 경쟁사회가 기형적 소통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최근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한 괴담이 급격하게 퍼지고 있다. 소위 ‘민영화 괴담’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전국을 휩쓸었다. 들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사실 확인은 전혀 없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떠오르게 한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머리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고 했다. 전국이 들끓었다. 광화문에는 촛불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MB정부 출범 3개월만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수십조원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특정 불만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유언비어나 악의적 소문의 확산은 반드시 의도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있다. 정부가 그 흐름을 좇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문과 괴담의 확산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철도노조 파업으로 볼 때, 정부의 대응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악의적 괴담 등의 확산시 대응시스템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이렇다. 통상적으로 악의적 괴담유포시 정부는 방어적 논리를 만든다. 그러나 정부가 만드는 방어논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악의적 괴담유포를 공격적 논리로, 정부 대응을 방어적 논리로 보자. 공격적 논리에 방어적 논리로 대응하는 것은 그 자체가 힘에 부친다. 공격적 논리는 방어적 논리에 비해 최소한 10배에 가까운 확산속도를 가지고 있다. 대중에게 인지되는 신뢰도 또한 그 정도에 가깝다. 그럼에도 대응이 늦어진다면 당연히 공격적 논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경보에서부터 대응까지를 말이다.
MB정부 당시에도 이 같은 문제는 심각하게 논의된 바 있다. 촛불사태에 대한 교훈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육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 정부 온라인 대변인제였다.
그러나 온라인 대변인제도 사이버상에 나타나는 여론의 흐름과 동향체크 수준이었다. ‘선 발생 후 대응’체제에 불과했다. 그나마, 온라인 대변인 선발도 부처별 자리챙기기에 급급해 전문 인력양성에는 실패했다. 요즘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는 다른 형태의 개선이 필요하다. 대응시스템은 ‘선 발생 후 대응’의 개념이어서는 곤란하다. 공격적 논리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부정책을 효율적으로 알리는 홍보적 기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안의 예측에서부터 대응까지를 총괄해야 한다.
여론전략과 정무전략이 능한 전문인력도 필요하다. 정부정책에 대한 인지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줘야 한다. 특히 사안이 발생할 경우 대응창구 전략부터 정확한 사실이 신속하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도 해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말이 있다.
철도노조는 분명히 개혁대상이다. 그들의 주장은 명분도 없으며 집단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민영화를 하든 그렇치 않든, 개혁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힘에 겨워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모두가 비난하게 되면 나쁜 정책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엄청난 속도의 미디어시대다. 여론 전쟁인 것이다. 먼저 시대에 걸맞은 여론 정책을 다듬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디지털 여론 대응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슬을 꿰는 일이다. 빨리 서둘러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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