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선언 후 첫 행보 민주화 본산 '광주'
한강 작품 주인공 묘 유심히 주시하기도
광주의 어제와 오늘, 내일까지 두루 살펴
광주 청년들과 '불환빈 환불균' 공감대
4월 8일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묘지.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민주의 문에 들어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중년 남성들과 지지자 무리가 선망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길을 내줬다. 김 전 의원이 방명록을 작성하자 무슨 글을 적는지 지켜보려는 몇몇 사람들이 일제히 주변을 둘러쌌다.
김두관 전 의원의 발걸음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처럼 결연했다. 그러다 5·18 민주묘지에 가까워지니 굳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5·18 예산이 책정됐나요? 새로 해야 하나요?" 김범태 5·18 민주묘지관리소장은 "힘들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무명용사의 묘역에 참배한 김 전 의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의 소년 '동호'의 실제 주인공인 63년생 양창근 열사의 묘를 유심히 바라봤다.
김 전 의원은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광주를 찾은 이유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 광주 호남의 정신들이 우리나라와 대한민국을 지켜왔다"며 "가장 먼저 5·18 광주 영령들에게 인사드리는 게 기본과 예의라고 생각했다"는 말로 의미를 전했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이 패배했던 4·2 전남 담양군수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매우 중요한 교훈으로,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우리 민주 진보 개혁 진영은 늘 연대하고 연합하고 통합할 때 승리했다"고 진단했다.
"이재명 대표의 공개 사과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 전 의원은 지난 3월 5일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체포동의안이 가결 된 것을 두고 '검찰과 (비명계)가 짜고 한 짓'이라는 짐작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김 전 의원의 단호한 답은 지난해 8·18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유일한 이 대표의 '맞수'이자,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맹공에도 타협이 없던 김두관의 30여년 풀뿌리 정치 인생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대표 외에는 대권주자로 나설 인물이 전혀 없고, 나서서도 안 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는 상황에도, 심지어 비명계와 이 대표가 진행했던 회동에서 '논외'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이날 광주시의회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어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경선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권교체를 하더라도 시대적 과제인 국민통합 정치와 개헌을 실천할지 의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국민 여론이자 정계의 화두이지만 이 대표가 반대하고 있는 '개헌론'에 관해서는 "제왕적 대통령, 단원제 국회의 권력을 분산해 권력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토록 하고, 제1당의 입법권 남용을 제약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양해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자치분권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압도적 정권교체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완성하고, 다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게 해야 한다"며 "민주당의 경계를 넘어 탄핵에 동의한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완전개방형 오픈프라이머리로 '국민연합'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현 정국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누구도 섣불리 지키기 힘든 원칙과 같은 '대안'을 꺼내든 셈이다.
오전에 각각 호남의 과거(국립 5·18 민주묘지)와 현재(광주시의회)를 보여주는 장소를 찾은 김 전 의원은 이번엔 '미래'로 대변되는 광주 청년내일센터를 방문했다. 그는 지역 시민사회 대표들과 차담 직후 청년들에 "지금 우리 청년들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고 싶었다"고 방문 일성을 밝혔다.
김 전 의원의 대선 공약으로 그리고 있는 '청년자산제'는 모든 신생아에게 약 2000만 원을 정부에서 지원금으로 주고, 이 금액을 신탁해 20세가 되는 해에 5000만원 이상의 자산으로 돌려주는 지원 제도다. 상속세를 재원으로 하면 실현이 가능하다는 게 김 전 의원의 구상이다.
김 전 의원은 공약에 대한 생각을 청년들과 이야기하며 "이스라엘 유대인 청년들은 가족들의 경제적 지원을 비롯해 끈끈한 창업 네트워크로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또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보내달라"고도 제안했다.
청년과의 대담을 마치고 이동에 나서던 김 전 의원은 한 청년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왜 명함에 새겨진 이름에 구멍이 뚫려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김 전 의원이 "국민과 소통을 하기 위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몇몇 청년들은 김 전 의원을 향해 작은 감탄사를 냈다. 김 지사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을 들어 "명함에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백성은 가난에 분노하기보다는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라고 적혀있다. 30년 정치 인생을 돌아보면 좌우명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면서도 "그래도 놓치지 않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불공정'에 예민한, 취업을 준비하거나 준비해봤던 청년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 전 의원은 9일 부산을 방문해 출마 선언을 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는 등 대선을 겨냥한 보폭을 넓힌다. 경남 남해군수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고 경남도지사를 지냈던 김 전 의원은 민심의 향방을 가늠할 바로미터로 꼽히는 부산에서 민생 행보에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