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자보 걸기 '유행'에 뒤지면 안된다는 강박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은 '지극히 왜곡된 내용'
16일 광주시 북구 일곡동의 사거리 전봇대에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안녕신드롬’을 타고 한 고등학생이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는 “철도민영화로 인한 철도파업. 그 분들을 보면서 부끄럽게도 저는 안녕했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한 줄의 글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철도민영화‘ 한다고 코레일이나 정부가 한 번도 공언한 적이 없다. ’민영화 의혹‘을 민영화로 몰고 간 일부 세력들의 주장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둘째, 설사 ’철도민영화‘로 인해 파업을 한다손 치더라도 왜 한 지방의 고등학생이 자신의 안녕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대학생이 쓴 대자보를 그대로 옮기다 보니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논리적 오류가 생긴 것이다.
고려대에서 처음 대자보를 붙인 노동당 학생당원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월요일 날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나고 집에 들어와 철도파업 관련 인터넷 뉴스를 보고 화요일 아침에서야 부랴부랴 적었고” “열 받아가지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은 생각들 때문” 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리고 대자보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적인 내용”이라고 했다.
한 대학생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열 받아 부랴부랴 작성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수도권 및 일부 지방대 학생, 고등학생, 이제 일반 주부까지 가세하면서 소위 ‘안녕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즉,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파장’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일각에서 제기하듯이 대자보 내용이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업참가자 ‘직위해제’는 ‘해고’로, 철도민영화 의혹은 ‘철도민영화’로, 검찰이 수사 중인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은 ‘국정원 선거개입’으로 둔갑했다.
더구나 최초 작성자의 말대로 ‘열 받게 된’ 철도파업 문제를 놓고 보자. 우선 이번 파업은 명분도 실익도 없고, 수단도 잘못됐다. 파업의 핵심은 철도민영화 의혹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다. 정부와 코레일이 ‘수서발 KTX는 코레일이 41%, 공공기금이 59% 지분을 출자하는 100% 공기업이며, 절대 민영화는 없다고 공표했고, 최연혜 코레일 사장도 “철도 위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주말 도심을 점거하고, 철도청과 직접 관련이 없는 통진당 당원은 물론이고 민주노총까지 합세해 불법시위를 벌였다.
이렇게 ‘팩트’가 왜곡된 채, 대자보는 유행을 타고 여과 없이 수도권 및 일부 지방대 캠퍼스, 지방 도시까지 날아다니고 있다. 이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대자보를 붙이는 누구에게도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 학교에도 붙여야 하고 길거리 전봇대에도 버스정류장에도 유행하는 대자보 하나쯤은 붙여야 의식 있는 학생이 되는 꼴이다.
유행은 오프라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SNS 상에서 two level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SNS 상에서의 설전은 대통령 트윗까지 몰려가 욕설과 비방으로 관련 페이지를 삼켜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국민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미 구태 정치세력 및 일부 시민단체-종교단체들은 사실 왜곡과 부풀리기로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하여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고 가는 행위를 일삼았고, 불법시위와 국정발목 잡기로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시민들이 떠안았다. 그들은 반대와 비판 목소리에 아예 귀 기울일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대자보를 붙인 학생은 덧붙여 말했다.
“지금 특히 대학생들 세대 같은 경우는 일자리가 풍부했던 시기를 산 적이 없어요. 태어나자부터, 글 배우고 이랬을 때부터는 경쟁이 우선이고 너희가 IMF를 통과했었기 때문에 까딱해서 너희들이 공부 안 하고 이런 식으로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이야기하다가 너희들 때 놓치면 나중에 가서 다 굶어 죽는다. 이런 이야기 듣고, 지금 힘들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뛰었던 세대였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보고, 여유가 있어서 정치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럴 수가 없었거든요.”
요즘 대학생들만 힘든 시기를 살고 있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그 힘든 시기를 살고 있는 대학생들의 부모세대, 또 그 부모의 부모세대는 어땠는가? 일제 식민지, 북한의 6·25 남침,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하고 몰라서 길거리로 뛰쳐나가지 않는 것인가?
대학생과 청소년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 귀 기울이는 것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기 전에 사실관계를 파악해 무엇이 진실이고 문제인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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