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의 이야기㉑] 서울 영등포구 새고서림
“ 정말 필요한 말들 해 주는 책…한 틈 쉴 수 있는 도서 선보이고파”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독자들에게 언제나 ‘열린’ 새고서림
서울 영등포역 근처, 시끌벅적한 청과시장 골목을 지나면 ‘여기에 서점이 있어?’ 싶을 만큼 한적한 골목에 ‘새고서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작은 입간판 하나로만 찾을 수 있는 작은 서점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기자하면서 아늑한 공간이 독자들을 맞이한다.
새고서림은 2017년 출판사 새벽고양이를 운영하는 최수민 대표가 연 독립서점이다. 지난 2020년 신대방에서 처음 오픈했고 이후 2022년 당산동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시작은 최 대표의 ‘쉴 공간’을 위해서였다. 최 대표는 책을 쓰면서 직장은 다니던 작가 겸 직장인이었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며 집에 고립되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책 관련 행사까지 모두 취소되며 집에서 일하고 책을 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최 대표는 ‘책방’을 열며 ‘숨 쉴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최 대표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 공간은 운영할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작지만 적절한 공간을 찾았다. 그는 “큰 욕심 없이 시작했다. 이미 서점만으로는 큰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새고서림의 소박했던 첫 시작을 회상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물론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것에 목말랐던 독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이후 새고서림만의 뚜렷한 색깔을 구축해 나가며 지금의 서점이 탄생했다.
당산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엔 ‘24시간 운영’으로 콘셉트를 바꿔 ‘언제 와도’ 만날 수 있는 서점으로 거듭났다. 출판사 일과 서점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유인과 무인 운영을 병행하며 오히려 진입장벽을 낮추는 등 독자들과 자주, 또 꾸준히 만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디오북·단편 소설의 변신, 새고서림이 허무는 경계
24시간 운영 외에도, 새고서림은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곳이다. 책을 성우의 목소리로 듣는 오디오북을 카세트 테이프 콘셉트의 굿즈로 변신시켜 들으면서 소장도 할 수 있는 오디오북이 대표적이다. 카세트 테이프 속 큐알 코드를 통해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굿즈 속 책에 대한 설명까지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일본의 나카노 시호코 작가와 협업으로, ‘프로젝트 종이비행기’를 기획하기도 했다. 비행기 티켓과 봉투 안에 여러 장의 사진이 들어있는데, 이 사진 뒤 큐알 코드를 인식하면 에세이를 낭독해 주는 프로젝트다. 여느 오디오북과는 달리 영상과 함께 에세이를 즐길 수 있는 프로젝트로 종이책과 오디오북, 영상 콘텐츠의 경계를 허문 시도였다.
“우리 서점에는 형태가 독특한 책들이 많다. 제가 그런 걸 좀 좋아하는 편이다. 대형 서점에 없을 법한 책들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제가 아이디어를 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요즘 모든 것을 다 핸드폰으로 소화하지 않나. 그렇다면 책도 핸드폰으로 즐길 수 있다면, 조금 더 쉽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새고서점의 책모임도 특별해졌다. 모임에서는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등의 틀에서 벗어나 안대를 쓰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차 전문가가 블렌딩 한 차를 마시는 등 책을 ‘느끼는’ 경험을 나눈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모임까지. 책 관련 또는 사람 관련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며 위로를 나누기도 한다.
이는 독립출판물을 읽으며 공감하고, 또 응원을 받았던 것을 계기로 최 대표가 책을 쓰고 서점까지 열게 된 만큼,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책과 독자들 그리고 독자와 독자가 ‘연결’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들이었다.
“행복한 상태에서 오는 분들도 있지만, 마음이 지치거나 혹은 위로가 필요해서 온 분들도 많다. 방명록도 마련을 해뒀는데, 출근을 해보면 새벽에 오신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주시기도 하신다. 물론 대형 서점에도 좋은 책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유명 서점에서 판매하는 유명 책들은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을 때도 있지 않나. 독립출판물을 읽을 때 저에게 정말 필요한 말들을 해주는 것 같아 공감이 된 적이 있다. 저도 똑같이 우리 서점의 책들은 한 틈 쉴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선을 보이고자 한다.”
일본 작가와의 협업은 물론, 일본의 숨겨진 근대 문학을 발굴해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일본인도 미처 몰랐던 좋은 책들을 소개하며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책의 형태, 모임의 콘셉트는 물론 국가 간의 경계도 허물며 가능성을 확대 중이다. 그리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더 단단해진 새고서림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지금까진 그냥 오래 할 수 있는 게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며 왔는데, 최근에는 또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더라. 이전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야 살아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머물기 위해선 그만큼 더 단단하게 쌓아나가야 한다는 걸 최근 깨달았다. 지금은 더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 머무르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