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홈플러스 기업회생 절차 개시
경쟁사들 긴장도↑…유통산업발전법 발목
취지에 어긋나는 규제 없애고 피해 막아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
이 서양 격언은 착한 의도에서 출발한 정책이 나쁜 결과를 초래했을 때 흔히 인용된다.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론이 틀렸다는 데 방점이 있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 비판의 초점이다 보니 실패한 정책에 ‘면죄부’를 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규제의 역설은 시장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했지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일컫는다. 규제 시책을 만들 때 기대했던 순기능 보다 역기능, 부작용이 훨씬 더 큰 경우다.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쓴지 수년이 지났다. 코로나 해일은 도시 곳곳을 단절시키고 소비심리마저 꽁꽁 얼려놓았다. 유통업계의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년 전부터 이어진 업황 쇠락과 방문객 감소로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선 상황에서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 기업 일변도인 정책 기조는 변함이 없다. 최저임금은 계속해서 오르고 노동 공급은 더할 수 없이 경직됐다. 온라인 장보기도 일상이 됐다. 그런데도 국회는 오프라인 유통채널에 대한 더 많은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가 대표적이다. 매출 기준 국내 2위 홈플러스는 지난 4일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과도한 차입 경영으로 자금 압박이 심해진 데다, 단기신용등급이 투자적격 등급의 마지노선까지 하락하면서 어려움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 데 따른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홈플러스가 돌연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자, 경쟁사들의 긴장도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MBK 경영실패와 더불어 10년 넘게 이어진 대형마트를 향한 불합리한 규제가 큰 타격을 입혔다고 분석하면서다. 관계자들은 이번 위기가 홈플러스에 국한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업계를 둘러싼 영업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현재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과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만 영업할 수 있도록 한 영업시간 제한이다. 또 자정 이후에는 영업이 금지돼 이 시간대에는 온라인 배송 서비스를 할 수도 없다.
이는 지난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것이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10년 넘게 대형마트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홈플러스의 경우 의무 휴업으로 인한 매출 감소분이 연간 1조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유산법은 제정 당시만 해도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균형 있는 발전과 상생을 위해 출발했다. 잘 나가는 대형마트가 월 2회 정도 문을 닫는 것으로 양보해 전통시장에도 소비자들이 발길이 이어지도록 하자는 윈윈 전략이었다.
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현재, 소기의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으로 가는 대신 온라인 쇼핑몰에서 필요한 제품을 주문하기 시작했고, 중국 이커머스 기업의 공습이 거세지면서 국내 유통업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야당을 중심으로 규제가 더 늘고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출점제한을 5년 더 연장하고 관련 대상을 마트, 기업형슈퍼마켓에서 백화점, 면세점, 아울렛으로 등으로 넓혀 나가는 법안이 발의됐다.
법 시행 10년이 넘은 지금 법과 제도가 취지를 벗어났다면 변화된 상황이 반영되도록 손보는 게 마땅하다. 바뀐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법은 여러 폐해를 낳기 마련이다. 반(反)시장적 가격 규제로 병폐와 부작용을 불러온다. 홈플러스 사태, 더이상 남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