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회장, 제40대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연임 확정
"韓 경제 벼랑 끝" 작심발언 류진 회장 '성장엔진 되살리기' 약속
더 커진 보호무역주의…한경협, 트럼프 2기 체제 대응할 창구 역할 부상
2023년 8월부터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를 이끌어 온 류진 한경협 회장이 연임을 확정지었다. 류 회장은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실질 회원사로 복귀하고 네이버, 카카오, 두나무, 하이브 등 굵직한 기업들도 가입하는 등 한경협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류진 2기 체제'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등으로 대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만큼 한·미 경제계 가교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통'으로 꼽히는 그가 탄탄한 네트워크 역량을 앞세워 경제계 입장을 대변하는 등 한경협이 기업 창구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다.
"韓 경제 벼랑 끝" 작심발언 류진 회장 '성장엔진 되살리기' 약속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FKI타워 컨퍼런스센터 1층 그랜드볼룸에서 제64회 한경협 정기총회를 열고 류진 회장 재선임, 신규 회원사 가입 등의 안건을 의결했다.
한경협은 총회 참석자 만장일치로 류진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2023년 8월 한경협 회장에 취임한 류 회장은 향후 2년간 한경협을 이끌게 된다.
류진 회장은 취임 연설에서 “현재 한국경제는 성장과 정체의 ‘갈림길’ 수준을 넘어 ‘벼랑 끝’에 놓여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을 되살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글로벌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비교하며 한국 경제가 큰 위기에 있음을 강조했다. 10년 전인 2015년 대한민국 대표 기업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1900억 달러였을 때 엔비디아 시총은 삼성전자의 10분의 1, 대만 TSMC는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다.
10년 뒤인 현재 삼성전자 시총은 2400억 달러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사실상 그대로인 반면 엔비디아는 3조4000억 달러로 280배의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TSMC도 1조 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10위 반열에 올랐다.
류 회장은 "이 사례는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위기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 장면일 뿐"이라며 "지금 한국의 AI 투자규모는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반도체 생산라인의 증설허가를 받는 데만 2~3년이 걸린다. 제도의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에 우리 기업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고 꼬집었다.
1997년 IMF 위기를 극복할 때만 해도 기초체력이 튼튼했고, 리더십과 국민단합이 확고했지만 오늘의 여건은 그때보다 못하다며 첨단산업 육성법안들은 국회에서 표류하고, 정치적 갈등이 국민통합을 가로막고 있다고 류 회장은 지적했다.
그는 "상법 개정안 논의도 걱정스럽다.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어렵게 하고, 해외 투기자본이 손쉽게 경영권을 공격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고, 국민소득도 없다. 기업 위기가 국민의 위기이고, 국가의 위기"라고 강조했다.
한국 성장엔진을 되살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류 회장은 한국경제의 글로벌 도약, 국민과 함께 하는 동반자, 신뢰받는 중추 경제단체에 이어 '한국경제의 성장엔진 되살리기'를 임기 중 약속으로 추가했다.
구체적으로 류 회장은 앞으로 2년간 ①기업가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②기업환경 개선에 앞장서는 한편 ③글로벌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1월부터 '트럼프 2기 TF'를 가동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4대 그룹 이어 주요 IT 기업 합류…과거 영광 되찾는 한경협
류 회장은 2023년 8월 한경협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이후 한경협이 내부 쇄신 및 외연 확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특히 다양성 확보를 위해 IT 기업 회원사 유치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기총회에서 네이버, 카카오, 하이브, KT, 두나무 등이 한경협 회원사로 가입했다. 이번 총회를 통해 총 46곳의 회원사가 합류하게 되면서 한경협은 과거의 위상을 회복할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과거 한경협은 한 때 600여 곳에 달하는 기업을 회원사로 둔 최대 국내 경제단체였으나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4대 그룹을 비롯해 줄줄이 기업들의 탈퇴 러시가 이어지면서 위상과 규모 모두 쪼그라들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주요 행사마다 '패싱'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경협은 2023년 초, 초기 회장단 정신을 되살려 높은 안목과 비전을 갖춘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며 대대적인 혁신 계획을 밝혔다. 간판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 회장에 류진 풍산 회장을 추대했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과거 관행을 근절한다는 의지를 담은 윤리헌장도 발표했다. 이 같은 강력한 혁신 의지에 당시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회원사로 남아 있던 4대 그룹 계열사 대부분은 전경련의 한경연 흡수통합을 반대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한경협으로 회원사 자격이 승계됐다.
4대 그룹 합류로 자존심을 회복한 한경협은 탈퇴한 기업들의 재가입을 독려하고, 신규 업체 가입을 요청하는 등 회복에 매진해왔다. 이번 총회를 통해 46개의 회원사가 가입하게 되면서 국내 대표 경제단체로 재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더 커진 보호무역주의…한경협, 트럼프 2기 체제 대응할 창구 역할 부상
안정된 리더십을 인정 받은 류 회장은 트럼프 정부 출범 등으로 훨씬 거세진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불거진 계엄·탄핵 정국에서 경제계의 의견을 모으고 전달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미국통'으로 미 정·재계와 탄탄한 네트워크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류 회장은 이같은 국내 산업계 우려를 전달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미 경제계가 리스크를 줄이고 더 큰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는 총회 직전 대미 사절단을 묻는 취재진 질의에 "3월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간 통상 외교를 통해 재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대응방안을 구체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이 대미 경제사절단을 구성하는 상황에서 한경협도 류 회장을 중심으로 미 의회 주요 의원들과 만나 관세 정책, 대미 투자 협력 등을 중심으로 정책 논의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한경협은 이날 열린 제64회 정기총회에서 2025년 사업 목표를 ‘Leading The Way, Growing Together(리딩 더 웨이, 그로잉 투게더)’로 설정하고 ▲성장동력 확충 ▲트럼프 2기 대응 ▲민생경제 회복을 3대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Leading The Way, Growing Together’는 국가경제와 국민행복을 이끄는 중추 경제단체이자 글로벌 싱크탱크로서, 회원, 국민, 정부,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성장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류 회장은 개회사에서 "올해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수많은 난관에 둘러싸여 있다. 그만큼 올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한경협은 올 한해도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규제개혁을 비롯한 기업환경 개선에 앞장서 뛰겠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기업의 목소리가 가감없이 전달되고 전 세계에 닿을 수 있도록 민간 경제외교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